450만원대 애플 헤드셋을 안 사도 되는 이유[김성모 기자의 신비월드]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6월 17일 1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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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신(新) 비즈니스 가이드(39)

‘신비월드’는 세계 각국에서 세상을 이롭게 이끄는 혁신적인 기업과 새로운 정보기술(IT) 소식들을 소개합니다. ‘파괴적 혁신’을 꾀하는 스타트업부터 글로벌 주요 기업까지, 빠르게 변해가는 ‘신(新) 글로벌 비즈니스’를 알차게 전달하겠습니다.


● 9년 만에 내놓은 애플의 야심작
애플이 현실과 가상공간을 넘나들며 일상생활과 엔터테인먼트를 즐길 수 있는 혼합현실(MR·Mixed Reality) 헤드셋 ‘애플 비전 프로’를 선보였다. 애플이 새로운 유형의 하드웨어 신제품을 공개한 것은 2014년 애플워치 이후 9년 만이다.

애플은 6일(현지 시간) 본사가 있는 미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 애플파크에서 연례 개발자 회의(WWDC)를 열고 비전 프로를 공개했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의 “원 모어 싱(One more thing·하나 더 있다)”을 시작으로 비전 프로 소개가 이어졌다. 원 모어 싱은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1955~2011)가 제품 발표회 막판 가장 중요한 신제품을 선보일 때 썼던 말이다. 이날 2시간 프레젠테이션 중 3분의 1 이상을 헤드셋을 설명하는 데 썼다.

비전 프로는 눈앞에 컴퓨터 그래픽을 3차원(3D)으로 덧씌워 보여주는 혼합현실 헤드셋이다. 게임, 영화 같은 디지털 화면(가상현실·VR)을 실감 나게 띄우거나, 실제 장소에 가상의 사물, 화면을 결합(증강현실·AR)한다. 애플은 데모 영상에서 ‘미키 마우스’가 실제 거실에 등장해 뛰어노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스키 고글처럼 생긴 헤드셋을 머리에 쓰면, 비전 프로용 애플리케이션(앱)이 AR 형태로 등장한다. 헤드셋에선 손과 눈동자가 마우스 역할을 한다. 손동작으로 아이콘을 움직일 수 있다. 특정 지점(앱)을 보고 엄지와 검지를 꼬집듯 맞대면(선택) 프로그램이 실행된다.

비전 프로만 있으면, 책상 위 허공에 인터넷 화면과 소셜미디어 대화창, 메모 등을 여러 개 띄워 놓고 일할 수 있다. 영화관처럼 시야를 화면으로 가득 채우고 콘텐츠를 즐기는 것도 가능하다. 모니터나 TV 등 디스플레이 제약이 없다는 이야기다.

헤드셋에 달린 3차원 카메라도 눈길을 끈다. 사진과 동영상을 입체감 있게 촬영해, 시간이 지난 뒤에도 마치 그 순간으로 돌아간 듯한 생생한 경험을 할 수 있다. ‘3차원 사진·동영상’인 셈이다. 비전 프로로 ‘영통(영상 통화·페이스타임)’도 가능하다. 서로의 모습을 실물 크기의 3D 화면으로 보여준다. 바로 앞에서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통화할 수 있다.

애플은 비전 프로를 ‘착용형 공간 컴퓨터’라고 지칭하면서 “아이폰 이후의 완전히 새로운 플랫폼의 시작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헤드셋이 PC나 아이폰에서 해왔던 기능들을 대체하게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애플은 비전 프로를 내년 초 출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애플


● 애플 헤드셋을 사지 않을 10가지 이유
비전 프로에는 애플의 기술력이 전부 담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헤드셋에는 애플이 자체 제작한 반도체 칩 M2와 특별히 개발한 R1 칩이 탑재됐다. 애플의 R1 칩이 12개의 카메라와 5개의 센서, 6개의 마이크가 입력한 정보를 빠르게 처리한다. 기기는 눈을 한 번 깜박이는 것보다 8배 빠른 속도로 새로운 이미지를 띄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애플은 헤드셋 프로젝트에 7년간 70억 달러(약 9조 원)를 쏟아부은 것으로 알려졌다. 프로젝트에 투입된 엔지니어만 1000명이 넘는다. 마이크 록웰 애플 기술개발 부사장은 “최초의 공간 컴퓨터를 만들기 위해 시스템의 거의 모든 면을 새롭게 발명했다”며 “이 과정에서 5000여 개의 특허를 출원했다”고 강조했다.

신제품이 공개되고 외신들의 평가가 이어졌다. 먼저, 호평. 헤드셋을 직접 체험한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의 기자 조안나 스턴은 “3D 영화가 드디어 이해된다. 거대한 공룡이 바로 눈앞에서 벽을 뚫고 나왔다”고 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의 패트릭 맥기 기자는 “비전 프로에서 ‘애플 워치’나 ‘에어팟 맥스(헤드폰)’의 디자인 요소를 느낄 수 있다”면서 “소프트웨어는 아이폰이나 아이패드와 유사했다”고 긍정적인 의견을 내비쳤다.

반면, 부정적인 의견도 꽤 나왔다. 가장 먼저, 가격표가 눈을 비비게 했다. 애플이 책정한 비전 프로 가격은 3499달러(약 450만 원). 애플 제품 중 5999달러(약 760만 원)부터 시작하는 맥 PC 다음으로 비싸다. 최고 경쟁자라고 할 수 있는 메타(페이스북)는 이달 1일 차세대 MR 헤드셋 ‘퀘스트3’를 공개했는데, 499달러(약 63만 원)부터 시작한다. 비전 프로의 7분의 1 수준이다. 미 시장조사기관 서카나의 기술분석가 벤 아놀드는 “비전 프로 가격이 내 주택담보대출 월 상환액의 두 배가 넘는다”고 꼬집었다.

헤드셋이 불편하다는 평도 있었다. 스턴 WSJ 기자는 “고글의 핏과 마감은 애플에서 만든 제품다웠지만, 착용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코와 이마에서 무게감이 느껴졌다”고 전했다. 또, “스크린 앞을 만졌을 때 따뜻하게 느껴졌고, 오래 낄수록 구역질이 났다”고도 했다. 발열과 MR 헤드셋 고유의 문제로 꼽히는 어지럼증 증상이 비전 프로에서도 나타난 것.

AR 헤드셋 제조사 메르리프에서 임원을 지낸 타미르 버리너는 “헤드셋을 테스트해본 결과, 고객들은 부피가 큰 스트랩(끈)을 좋아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화장을 한 사람들은 스키 고글처럼 얼굴을 누르는 것을 싫어한다”고 했다.

배터리 용량도 문제로 꼽힌다. 비전 프로는 전원을 연결하지 않을 때는, 스마트폰 보조배터리처럼 유선으로 배터리를 달고 있어야 한다. 배터리 지속 시간도 2시간에 불과하다.

마켓워치는 6일 ‘애플의 3500달러짜리 고글을 사지 않을 10가지 이유’라는 글에서 높은 가격과 무게(450g), 메스꺼움 증상 등을 비전 프로의 문제점으로 꼽았다. “(썼을 때) 우스꽝스러워 보인다”는 평가도 달았다.

애플 비전 프로 GIF
애플 비전 프로 GIF


● 코드명 N421과 N301
애플은 2015년 헤드셋 제작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당시 애플은 최고 경영진과 이사회 구성원들에게 데모 기기를 제공했는데, 현재의 MR 헤드셋이 아닌 가벼운 안경 형태의 증강현실(AR) 기기였다. 애플에서는 이 ‘웨어러블 기기’에 ‘N421’이라는 코드명을 붙였다.

쿡은 게임을 실감 나게 즐길 수 있는 가상현실(VR)보다 AR 기능을 선호했다. 안경 렌즈에 인터넷 화면이나 문자 메시지를 띄워 PC나 스마트폰을 쓰지 않고도 업무나 일상생활을 하는 모습을 떠올렸다. AR 안경이 PC·스마트폰을 대신해줄 수 있다고 믿은 듯하다.

AR 안경이 어떤 것인지 감이 안 온다면 인기 만화 ‘드래곤볼’을 떠올려 보는 것도 좋은 방법. 만화에는 ‘스카우터’라는 기기가 등장한다. 안경처럼 눈에 착용하고 상대를 바라보면 전투력 정보와 상대 거리, 위치 등을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증강현실 기술이다.

2015년 말, 애플은 기술개발그룹(TDG)이라는 비밀 조직(실제로 사무실도 따로 있음)을 꾸리고, N421 개발을 시작했다. 마이크 록웰 애플 기술개발그룹 부사장이 TDG의 수장 역할을 했다. 직전 해, 애플워치를 선보인 조니 아이브 전 애플 최고디자인책임자(CDO)도 곧이어 프로젝트에 가담했는데, 둘은 티격태격했다.

록웰 등 개발자들은 고차원의 게임을 실감 나게 즐길 수 있는 고성능 VR 헤드셋을 만들고자 했다. 그런데, 강력한 그래픽이 작동하려면 TV 수신기 크기의 작은 컴퓨터도 고객들에게 함께 보내야 하는 것이 문제였다. 아이브는 “헤드셋의 성능이 좀 떨어지더라도 최대한 사람들이 가지고 다닐 수 있는 휴대용 장치가 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이 서로를 ‘고립’시키게 만드는 데에 애플이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면서 반대했다.

경량 안경 형태의 증강현실을 선호했던 쿡도 반대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는 2016년 미 유타주에서 열린 한 기술 콘퍼런스에서 학생들에게 “여기 있는 사람 중 대부분은 컴퓨터에 연결된 채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우리는 본질적으로 사회적인 사람들이라 극소수만이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 세상을 괜찮다고 여긴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나온 절충안이 코드명 ‘N301’이다. AR 장치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면서 VR 기능까지 수행하는 기기. 맞다. ‘비전 프로’다.

애플


● 완벽한 절충안이란 없다
비전 프로에도 쿡, 아이브의 철학이 일부 담기기는 했다. ‘아이 사이트(Eye Sight)’ 기능이 대표적이다. 이는 사용자가 콘텐츠에 몰입한 상황에서 누군가 다가오면 헤드셋 화면이 투명하게 전환되는 기능이다. ‘시력(Eyesight)’이란 단어에서 재밌게 뽑아낸 듯하다. 눈앞이 컴컴하다가 갑자기 시력을 찾은 느낌이랄까. 사용자는 다가오는 사람을 인식할 수 있고, 주변 사람은 고글 화면 안의 이용자의 눈이나 표정을 볼 수 있다.

애플의 한 관계자는 외신에 “아이 사이트 기능 덕분에 사람들은 헤드셋 착용자를 로봇이라고 느끼지 않고 편안하게 상호작용 할 수 있다”면서 “애플은 이 기능을 경쟁사 VR 헤드셋과 차별화하는 경쟁력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애플의 절충안이 결과적으로 어정쩡하고 비싸기만 한 제품을 만들었다는 비판도 있다. 블룸버그는 “과거 잡스는 아이패드를 공개하면서 ‘인터넷을 하거나 영화를 볼 때 맥이나 아이폰보다 낫다’고 했고, 애플워치는 ‘아이폰보다 고객의 움직임을 잘 포착한다’고 설명했다. 이와 다르게 비전 프로는 기존 제품보다 명확한 장점을 소개하지 못한 것 같다”고 전했다.

디자인에 대한 악평도 있었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6일 행사 직후 “애플의 설명처럼 이 헤드셋 기술이 사람들의 삶을 정말 바꾼다면. 이 제품을 착용했을 때 우리가 어떻게 보이는지가 굉장히 중요하다. 매일 착용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이어, “하지만, 쿡이나 록웰, 아니 누구도 무대에서 비전 프로를 착용하지 않았다. 쥐꼬리를 연상케 하는 배터리 연결선이 창피했던 것일 수 있다”고 비꼬았다.

애플(특히, 잡스)은 기능적으로나 미학적으로나 항상 완벽함을 추구해온 것으로 유명하다. 스키 고글 형태의 비전 프로는 애플의 이전 작품과 비교하면 특별해 보이진 않는다. 각자의 판단에 맡기겠다.

▶신비월드 21화, ‘애플은 왜 접는 폰을 안 만들까?’ 참고
https://www.donga.com/news/It/article/all/20220828/115175417/1

참고로, 비전 프로는 애플에서 디자이너가 아닌 개발자들이 주도한 첫 작품이다. 아이브는 2019년 애플을 떠났고, 록웰이 비전 프로 프로젝트를 담당했다.

비전 프로의 휴대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애플의 비전 프로 공개 영상에는 혼자 있거나, 가족과 있을 때 헤드셋을 사용하는 모습만 담겼다. 지하철이나 회사 같은 공공장소에서 착용한 장면은 보이지 않았다. NYT는 “영상에서 비행기에 탄 사람이 등장하기는 했지만, 비행기는 사실상 주변을 신경 쓰지 않는 장소”라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애플은 행사에서 ‘웨어러블’이라는 단어를 언급하지 않았다.

AP 뉴시스
AP 뉴시스


● “예전엔 증강현실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
애플이 기대에 못 미치는 MR 헤드셋을 내놨지만, 쿡은 ‘증강현실 시대’에 확신이 있는 듯하다. 그는 지난해 한 행사에서 대학생들에게 “내 또래가 ‘인터넷 없이 어떻게 자랐을까’라고 이야기한 것처럼, 여러분이 ‘증강현실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 궁금해하는 날이 가까운 시일 내에 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애플이 비전 프로를 공개하면서 ‘공간 컴퓨팅’이란 단어를 사용 한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보인다. 헤드셋이 가상 세계로 보내는 도구가 아니라, 주변 사람과 상호작용하며 일상적인 업무를 더 편리하게 만드는 기기가 될 것이라고 목적을 분명히 밝힌 것.

애플은 행사에서 가상현실 세계를 뜻하는 ‘메타버스’ 단어를 꺼내지 않았다. 쿡은 지난해 한 네덜란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도 메타버스 용어 사용을 피했다.

미 투자은행 번스타인의 애널리스트 마크 시뮬릭은 “헤드셋이 시계와 이어폰, 스마트폰을 보완하는 날이 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언젠가는 주머니에 휴대전화가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과연, 노트북·PC가 놓인 책상에 앉거나 얼굴 앞에 휴대전화를 둬야만 했던 구속된 삶에서 벗어나는 날이 곧 올까.

애플의 야망처럼 하루 종일 기기를 착용한 채 밖을 돌아다니며 검색도 하고, 이메일도 보내고, 전화도 하고 게임, 명상까지 하려면(=아이폰 대체) 몇 년은 걸릴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기술적인 한계 때문이다. 비전 프로 개발팀은 AR 안경에 아이폰 성능을 집어넣으면 기기가 지나치게 뜨거워진다는 점을 발견했다. NYT는 “발열 문제로 아이폰 성능의 10분의 1만 비전 프로에 사용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몇 시간을 착용하고 돌아다니려면 지금보다 훨씬 더 가볍고 배터리가 오래 지속돼야 하는 과제도 있다.

헤드셋 프로젝트에 참여한 한 직원은 “엔지니어들끼리 쿡을 만족시키기 위해 가망 없는 작업을 하고 있다는 농담을 주고받곤 했다”고 NYT에 전했다.

토니 파델 전 애플 임원은 “현재 AR, VR 기기는 게임, 화상 회의 같은 ‘구체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능숙한 것 같다. 아이폰과 같은 역할을 기대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라며 “적어도 5년 안에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파델은 잡스와 아이팟을 개발하며 10년간 애플 아이팟 팀을 이끌어 ‘아이팟의 아버지’로 불리는 인물이다.


● ‘아이폰 여정’ 시작한 비전 프로
비전 프로가 아이폰과 비슷한 과정을 거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2007년 1월 9일, 애플이 아이폰이라는 반짝거리는 기술을 처음 들고나왔을 때, 세상이 발칵 뒤집히진 않았다. 전화, 이메일 작성과 인터넷 검색, 음악 감상 등 새로운 기능은 없었다. 아이폰이 최초의 스마트폰도 아니었다. (국내에서도 기존 휴대전화에 비해 너무 크다는 악평도 많았다)

지금의 아이폰을 만든 것은 수많은 애플리케이션 개발자였다. 지금은 익숙해진 그룹 대화방(소셜네트워크서비스), 택시 호출, 숏츠(짧은 동영상), 캐주얼 게임, 모바일 결제 같은 ‘킬러앱(Killer Application)’들이 계속 생겨났다. 이코노미스트는 “2007년에도 499달러(약 64만 원)의 아이폰 출시 가격이 논란이었다. 현재 고객들이 아이폰에 1000달러(약 128만 원) 이상을 쓰게 하기까지 몇 년이 걸렸다”고 6일 전했다.

애플의 스마트 시계인 애플워치도 처음부터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WSJ은 “쿡이 처음 애플워치를 공개할 때 심장 박동수를 표시하거나, 문자메시지를 보낼 수 있고, 일부 앱을 실행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당시에는 다들 ‘도대체 이게 무슨 용도일까’ 생각했다”고 전했다.

사람들은 애플워치를 피트니스와 건강을 목적으로 구매했고, 애플은 이를 알아채고 관련 기능을 보완하는 데 집중했다. 개발자들도 애플워치용 운동·건강 앱을 내놓았다. 처음 애플의 스마트워치 판매는 미미한 수준이었지만, 현재는 연간 5000만 대가 팔린다.

즉, 비전 프로를 성공시키려면 기기가 앱 개발자들의 손에 빨리 넘어가야 한다는 해답이 나온다. 이코노미스트는 “애플은 고가의 1세대 제품이 얼마나 팔리든 신경 쓰지 않을 것”이라면서 “공간 컴퓨팅으로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알아낼 수 있는 사람들에게 제품을 제공하는 것이 목표”라고 전했다.

무엇보다 비전 프로는 아이폰이나 애플워치보다 앞선 출발점에서 시작할 수 있다. 기존 기기와 연동만 잘 돼도 헤드셋이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맥, 아이폰, 애플워치, 에어팟 등 전 세계에는 20억 대가 넘는 애플 제품이 깔려 있다.

비전 프로가 아이폰 앱스토어처럼 생태계를 갖거나, 애플워치처럼 존재 이유를 발견하면 그때 사도 늦지 않을 것 같다. (새로운 경험이 간절하다면 말리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그렇게 된다면, 그동안 “혁신이 없다”는 비판을 받아 온 쿡 역시 잡스의 반열에 오르지 않을까. 아이폰이 처음 나오고 앱스토어는 첫 달에 3000만 달러(약 385억 원)의 매출을 거뒀다. 당시 잡스는 “언젠가 10억 달러(약 1조2800억 원) 규모의 시장이 될지 누가 알겠나?”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현재 앱스토어의 연 매출은 700억 달러(약 89조8800억 원)가 넘는다. 여기에 광고 관련 수익까지 포함하면 금액은 더 커진다.

그때쯤이면 비전 프로의 높은 가격에 대한 지적도 사라질 것이다. 공교롭게도 1976년 애플이 처음 선보인 컴퓨터(애플1) 가격은 666달러였다.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비전 프로 가격과 거의 같은 3500달러 수준이다.

김성모 기자 m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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