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러 ‘핵군축 합의’ 붕괴 위기… 글로벌 핵 군비경쟁 심화될듯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2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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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핵감축조약 참여 중단 선언
NYT “군축시대 사실상 종말 선언”
美-러에 北-中 등 개발 가속화 전망
G7 “러, 뉴스타트 복귀를” 공동성명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신전략무기감축조약(New START·뉴스타트)’ 참여 중단을 전격 선언하면서 탈(脫)냉전 후 구축된 미-러 간 핵 군축 합의가 붕괴 위기를 맞았다. 푸틴 대통령이 핵 위협을 우크라이나 전쟁과 연계할 뜻을 분명히 하면서 2026년 만료되는 ‘뉴스타트’를 대체할 새 합의가 사실상 불가능해진 것 아니냐는 우려가 크다. 이로 인해 미국과 러시아가 각각 실전 배치 핵탄두 규모를 늘리는 것은 물론이고 중국 북한 이란 등도 핵 개발을 가속화해 글로벌 핵 군비 경쟁이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미-러 신전략무기감축조약(New START Treaty·뉴스타트)
2011년 발효된 미국과 러시아의 핵무기 감축 조약으로 양국에 실전 배치된 전략 핵탄두 수를 1550개로 제한하며 연간 18회 상호 현장 검증을 허용하도록 하는 협정.


● 푸틴 “美 성의 보여야 뉴스타트 복귀”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 1년을 사흘 앞둔 21일(현지 시간) 국정연설을 통해 “뉴스타트 참여를 중단하겠다. 미국이 핵실험을 하면 러시아도 핵실험을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뉴스타트는 1991년 체결된 미소 ‘전략무기감축조약(START·스타트)’의 후속 협정이다. 미국과 러시아가 실전 배치한 핵탄두 수를 각 1550기 이하로 줄이고 상호 핵시설을 사찰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현지 시간) 폴란드 바르샤바 왕궁 정원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1년 관련 연설을 한 후 
우크라이나 국기를 든 어린이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연설에서 “푸틴의 비겁한 욕망은 실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바르샤바=AP 뉴시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현지 시간) 폴란드 바르샤바 왕궁 정원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1년 관련 연설을 한 후 우크라이나 국기를 든 어린이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연설에서 “푸틴의 비겁한 욕망은 실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바르샤바=AP 뉴시스
그의 발언은 뉴스타트의 전면 파기가 아니라 조약 중 핵 사찰 허용을 중단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러시아 외교부는 성명을 통해 “조약에 따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 계획을 계속 미국에 통보할 것”이라며 “핵탄수 배치 제한도 준수하겠다”고 밝혔다. CNN에 따르면 러시아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키이우를 방문한 20일 세계 최대 ICBM ‘사르마트’ 시험 발사 계획도 미국에 통보했다.

푸틴 대통령의 뉴스타트 참여 중단 선언은 미국 등 서방에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중단을 압박하고, 전쟁 장기화에 지친 자국 여론을 무마하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조약 복귀 조건에 대한 질문에 “모든 것은 서방에 달려 있다”며 서방의 태도 변화를 주문했다. 러시아의 복귀를 원하면 러시아를 겨냥해 배치된 프랑스와 영국 핵무기를 어떻게 할지도 논의해야 한다고 했다. 중국 정부도 “양측이 건설적인 대화와 협상을 통해 이견을 적절히 해결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이 러시아의 요구를 일정 정도 수용해야 한다는 취지다.

뉴스타트의 핵심인 ‘상호 핵 사찰’이 중단되면서 탈냉전 이후 유지됐던 군축 체제의 훼손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미 국무부는 최근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를 통해 “핵탄두 수를 줄였다는 러시아의 발표를 확신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3년 뒤 종료될 뉴스타트를 대체할 새 군축 합의에 대한 논의도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21일 “수십 년간 지속된 군축 시대가 사실상 끝났다는 신호”라고 지적했다.

● 미-러, 핵무기 2배 증강 北-中-이란도 가세

뉴스타트가 효력을 상실하면 미-러 모두 대대적인 핵탄두 증강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학자연맹(FAS)은 이달 초 보고서에서 뉴스타트 종료 시 미국의 핵탄두는 기존 1670기에서 3570기, 러시아는 1674기에서 2629기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과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 또한 현 400기인 핵탄두를 2035년까지 1500기 이상으로 늘릴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 이란, 인도, 파키스탄 등 기존 핵 보유 및 개발국의 핵 군비 경쟁 확산도 뒤따를 가능성이 높다. NYT는 “북한은 ICBM을 시험발사했고 이란은 무기급 핵연료를 생산하는 데 빠른 진전을 보이고 있다. 세계가 새 핵무기의 폭발적 증가 시대에 직면했다”고 지적했다.

주요 7개국(G7) 외교장관은 21일 공동성명을 내고 “러시아의 무책임한 핵 관련 발언을 규탄한다”고 밝혔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은 “전체 군비통제 설계가 해제됐다”며 조속한 뉴스타트 복귀를 촉구했다.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


#미국#러시아#핵군축 합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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