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정부 ‘아베 특혜의혹 재판’ 돌연 종결… 진상 묻힌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2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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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토모 사학법인 특혜 제공 의혹, 아베 “관련 있다면 총리 사퇴” 부인
이후 재무성서 관련 결재문서 조작… 조작 반대 공무원 극단적인 선택
정부, 배상 반대서 돌연 태도 바꿔… 11억원 전액 수용하고 재판 끝내
유족 “돈보다 사망 이유 알고 싶어”

아베 신조(安倍晋三·사진)가 일본 총리일 때 벌어진 사학재단과 정권의 유착 의혹을 은폐하는 과정에서 공무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과 관련한 소송에 대해 일본 정부가 1년 9개월 만에 배상 책임을 인정하고 서둘러 재판을 끝냈다. 소송을 당한 정부 측이 재판 도중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이로써 권력 유착 의혹에 대한 진상 규명도 막히게 됐다.

16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일본 재무성 긴키(近畿)재무국 직원이던 아카기 도시오(赤木俊夫·2018년 사망)의 부인 마사코(雅子) 씨가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정부는 약 1억700만 엔(약 11억 원)의 배상금 청구를 전액 받아들이기로 했다. 정부는 소송을 낸 원고의 청구를 모두 수용한다는 취지의 서류를 15일 오사카지방법원에 비공개로 제출했고 소송은 증인 신문 없이 끝나게 됐다.

정부 측은 그동안 원고의 배상 청구를 기각해 달라고 요청해 왔는데 갑자기 태도를 180도 바꿔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정부는 법원에 낸 서류를 통해 “결재 문서를 위조하는 중대한 행위가 있었던 사안의 성격을 감안해 소송을 헛되게 길게 끄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는 15일 “재판소(법원)의 소송 지휘에 따라 소송에 임해온 결과 재무성이 손해 배상에 관해 전면적으로 인정했다”고 말했다.

아카기의 유족은 반발했다. 마사코 씨는 15일 오사카시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남편이 왜 사망했는지 알고 싶어 시작한 재판이다. 돈을 받고 끝낼 문제가 아니다”며 “(사망한) 남편에게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아사히신문은 “진상 규명의 기회를 정부가 막아버린 형국”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사건의 발단은 2016년 6월 긴키재무국이 국유지를 사학법인 모리토모학원에 헐값인 1억3400만 엔에 팔면서 일어났다. 감정액보다 약 8억 엔(약 83억 원) 싼 금액이었다. 2017년 2월 아사히신문이 이 문제를 보도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됐고, 모리토모학원 이사장과 친분이 있던 아베 전 총리 부부가 특혜를 줬다는 의혹이 일었다. 아베 전 총리의 부인 아키에(昭惠) 여사는 모리토모학원 산하 초등학교의 명예교장이었다. 아베 전 총리는 2017년 2월 17일 국회에서 “나와 아내가 관련됐다면 총리도, 의원도 그만두겠다”고 강경한 자세를 보였다.

아베가 이렇게 말한 뒤부터 재무성 공무원들이 알아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2017년 2월 말부터 4월까지 국유지 매각 관련 결재 문서를 조작했다. 이 당시 일본에선 ‘손타쿠(忖度)’라는 말이 유행했다. ‘윗사람이 원하는 대로 알아서 긴다’는 뜻이다.

문서 조작에 강하게 반대한 아카기 씨가 2018년 3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부인 마사코 씨는 ‘결재 문서를 고친 것은 전부 당시 상사의 지시’ 때문이라는 남편의 유서를 공개하고 작년 3월 일본 정부와 전 재무성 이재(理財)국장 사가와 노부히사(佐川宣壽)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소송을 제기한 원고 측은 문서 조작을 지시한 사가와에 대한 소송을 통해 앞으로 재무성 간부 등을 증인으로 신문하고, 진상을 규명한다는 계획이다.

‘모리토모학원 문제 재조사’는 일본 정계에서 사실상 금기어다. 아베 전 총리의 심기를 건드릴 수 있기 때문이다. 기시다 총리는 자민당 총재 선거 전인 9월 2일 위성방송에 출연해 모리토모학원 문제에 대해 “국민이 충분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에 더 설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가 닷새 후 “재조사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말을 바꿨다. 당시 일본 언론들은 아베 전 총리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아베 특혜의혹#아베 재판 종결#모리모토 사학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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