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간 美의원 지냈던 ‘공화당의 거인’ 밥 돌 별세…워싱턴 추모 물결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2월 6일 12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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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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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였던 밥 돌 전 상원의원이 5일(현지 시간) 폐암으로 별세했다. 향년 98세. ‘공화당의 거인’으로 불렸던 그의 별세 소식에 워싱턴 정가에서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추모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미국 언론들은 이날 일제히 돌 전 상원의원의 사망을 주요 뉴스로 다루며 그의 일생을 재조명했다. 그는 2월 폐암 4기 판정을 받은 사실을 공개하고 투병해왔다.

돌 전 의원은 3차례 대선에 출마했던 미국 공화당의 거물 정치인. 제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이자 35년간 연방 상·하원의원을 지내며 의회를 이끌었던 미국 정계의 대표적인 원로 지도자로 평가받는다.

1923년 캔자스주에서 태어난 돌 전 의원은 1943년 2차 대전에 육군으로 참전했다. 1945년 이탈리아 볼로냐의 전쟁터에서 동료 병사를 돕다가 독일군의 포탄에 맞아 척추와 오른팔, 등에 심한 부상을 입었다. 뼈가 산산조각이 나면서 목 아래부터 오른팔이 마비되는 심각한 부상으로 사경을 헤매던 그는 이후 수차례의 수술과 재활치료 후에도 평생 오른손을 쓰지 못하는 장애를 갖게 됐다.

1950년 캔자스주 하원의원에 당선되며 정치를 시작한 그는 1960년 연방 하원의원으로 중앙정치에 진출했고, 이어 1968년 상원의원에 당선되며 보폭을 넓혔다. 1985년부터 1996년까지 11년간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를 맡아 사회보장 개혁을 비롯한 주요 입법 과정의 협상을 책임졌다. 2018년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에게 기록을 뺏기기 전까지 미국의 최장수 상원 원내대표였다

돌 전 상원의원은 1976년 제럴드 포드 당시 대통령 후보의 러닝메이트로 지명됐으나 포드 후보가 민주당 대선 후보 지미 카터에게 밀려 선거에서 패했다. 4년 뒤인 1980년에 이어 1988년에 직접 대선에 뛰어들었지만 경선에서 밀렸고, 1996년 세 번째 시도에서 공화당 대선 티켓을 거머쥐었지만 재선 도전에 나선 민주당의 빌 클링턴 당시 대통령에게 무릎을 꿇었다.

남달랐던 그의 유머 감각은 그의 대중적 인기를 높여준 또 다른 바탕이었다. 그는 대선에서 패한 직후에도 자신의 패배를 유머러스하게 언급하고 TV토크쇼에 출연해 수차례 청중들의 웃음을 이끌어내는 등 여유를 잃지 않았던 정치인으로 기억된다. 그는 1997년 대통령이 수여하는 자유의 메달, 2018년 미국 최고 훈장 중 하나인 의회 명예훈장을 받았다.

2016년 미국 대선 때는 공화당 대선 후보를 지낸 인사 중 유일하게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했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대선 후 트럼프 전 대통령이 주장한 부정선거 의혹과 대선 불복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입장도 분명하게 밝혔다.

돌 전 상원의원은 북한에 대해 강경한 목소리를 냈던 정치인이다. 그는 공화당 원내대표를 맡고 있던 1993년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1차 북핵 위기가 발생하자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 협상 전략을 비판하며 북한의 핵 미보유 확인, 핵 계획 중단 때까지 북한에 경제 지원을 반대했다. 그는 북한을 향해 ‘잔혹한 독재정권’이라고 비판했고, 1994년 김일성 북한 주석이 사망했을 당시 빌 클린턴 대통령이 애도 메시지를 내자 “한국전쟁 참전용사 및 그의 가족들을 생각했을 때 부적절하고 둔감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날 워싱턴에서는 공화당은 물론이고 민주당에서도 그를 추모하는 성명과 메시지가 쏟아졌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성명을 내고 “돌 전 의원은 우리 역사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미국의 정치인이자 가장 위대한 시대에서도 가장 위대한 전쟁 영웅이었다”고 그를 기렸다. 바이든 대통령은 돌 전 의원과 24년간 상원에서 함께 의회 활동을 하며 그를 ‘친구’로 불러온 막역한 사이로, 그가 암 투병을 시작한 2월 그의 병상을 찾아 격려하기도 했다.

민주당 소속으로 그와 대선에서 경쟁했던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전 생애를 미국에 봉사하는 데 바친 밥 돌의 사례는 현 시대는 물론 후대의 여러 세기에 사람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을 것”이라고 했고,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도 성명에서 “전쟁영웅이자 나라를 당 위에 놓았던 진정한 정치 지도자”라고 기렸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미국의 가장 훌륭한 가치를 대표하는 위대한 애국자”라고 평가했고, 트럼프 전 대통령도 “진정한 애국자”라고 애도했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원장은 의회 건물에 조기를 게양하도록 지시했다.


워싱턴=이정은 특파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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