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한식당에 자리한 ‘은둔형 외톨이’들의 재활 공간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9월 16일 21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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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푹신푹신해!”

9일 오후 오사카부 주오구의 한 골목. 건물 1층에 ‘곰 손 카페’라는 이름의 카페가 문을 열었다. 점원이나 내부 출입구는 보이지 않고 회색 벽에 구멍 2곳이 뚫려 있었다. 그 중 옛날 영화관 매표소를 연상케 하는 네모난 구멍으로 손님들이 커피 등 음료를 주문했다. 5분 뒤 바로 옆 타원형의 또 다른 구멍에서 푹신한 갈색 곰 인형의 손이 음료를 쥔 채 나왔다. 음료를 넘겨받은 손님들은 곰 손과 사진을 찍고 손바닥을 마주치기도 했다. 이 ‘곰’은 손님들의 환호에 손을 흔들거나 빨간 장미를 건네는 등 ‘팬 서비스’도 보였다.


벽과 구멍 밖에 보이지 않는 이 카페의 정체는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나 대인 기피증을 겪는 사람들의 ‘재활 공간’이다. 타인에 대한 두려움 등 사회에 나설 준비가 되지 않은 이들도 일할 수 있도록 한 비대면 형태의 카페다. ‘곰 인형 장갑’으로 손님을 응대한다는 아이디어가 이들의 취업 등 사회 복귀를 앞당기도록 한 것이다. 이날 현장을 찾은 손님 미사 씨(33)는 “곰 손이 불쑥 나와 놀랐지만 (카페 설립의) 취지를 듣고 나니 매우 뜻 깊은 것 같다. (소외된 계층 등) 사회 여러 사람들이 일 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는 것 같아 좋다”고 했다.


벽 뒤에는 3.3㎡(1평) 남짓한 공간에 6명의 사람들이 시간대 별로 나눠 손님을 응대하고 있다. 이곳에서 곰 인형 장갑을 끼며 응대하는 에자와 메구미 씨(28)는 5년 전 직장에서 상사로부터 갑질과 폭언에 시달리며 대인 기피증에 빠졌다. “여자가 뭘 안다고 하냐”는 등의 성차별을 받았지만 맡은 바 업무 완수를 위해 참고 견뎠다. 그러나 쌓이는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자 몸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고 결국 정신과 상담을 받는 지경에 이르자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정신 상담 학원을 다녔고 자신과 같은 대인 기피자를 돕고 싶다는 생각에 ‘심리 상담 자격증’도 취득했다. 이 카페에 취업한 이유를 묻자 그는 “내가 사회에 복귀했다는 것을 알려 다른 대인 기피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고 했다.


일본 내각부가 지난해 발표한 ‘어린이 젊은층 백서’에 따르면 대인 기피가 심해져 나타나는 은둔형 외톨이, 이른바 히키코모리의 일본 내 규모는 약 115만 명(15~64세)으로 추정된다. 특히 은둔형 외톨이는 심각한 사회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2019년 5월 수십 년 간 집 밖을 나오지 않았던 50대 남성이 가나가와현 가와사키시의 한 초등학교 등굣길에서 흉기를 휘둘러 20명의 사상자를 내는 등 이들을 둘러싼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일본 정부와 지자체들은 은둔형 외톨이의 계기가 퇴직(36.2%) 혹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6.4%) 등 43%가 일과 관련된 것에 착안해 이들의 취업 지원을 중점적으로 돕고 있다.

카페를 기획한 것은 에자와 씨가 힘들 때 다녔던 상담 학원의 원장인 히라무라 유이치로 씨(61)다. 그는 “정신적으로 약하고 섬세해 다치기 쉬운 이들을 사회 부적응자로 볼 것이 아니라 보호하고 사회로 재진출 시키는 것이 사회의 역할”이라고 했다.

이번 기획에는 한국인도 동참했다. 카페는 한 한식당의 공간 일부를 개조한 것으로 한식당 사장인 이동호 씨가 평소 알고 지내던 히라무라 씨로부터 취지를 듣고 흔쾌히 자신의 식당 공간을 내 준 것이다. 20년 간 오사카에서 한식당을 운영해온 이 씨는 “좋은 뜻에 동참하게 돼 기쁘다”고 했다.


오사카=김범석 특파원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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