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대북제재 병행’에… 北 “대단히 큰 실수” 하루 3건 비난 담화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5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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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대북정책에 北美 충돌]

《 1월 출범 이후 대북정책 검토를 이어갔던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외교를 모색하는 실용적 접근”이라는 새 대북정책의 기조를 처음으로 밝혔다. 그러나 북한은 대북제재 유지와 인권문제 거론에 “상응 조치를 강구할 것”이라며 위협으로 응수했다. 미국의 정권 교체 기간과 맞물려 한동안 잠잠했던 북-미 간 공방 국면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앞으로 “미국은 매우 심각한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한 북한의 경고가 현실화되느냐에 따라 한반도 비핵화 논의의 방향도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



바이든 정부, 101일 만에 대북정책 큰틀 제시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내놓은 새 대북정책의 핵심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목표로 외교와 함께 제재, 압박을 병행하겠다는 실용적 접근’으로 요약된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초기 추진했던 ‘일괄타결(grand bargain)’ 방식,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지속했던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의 중간지대를 찾아 대북 접근을 유연하게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우리의 정책은 일괄타결을 추진하지 않을 것이며 ‘전략적 인내’에도 의존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런 방향성을 확인했다. 그는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과의 외교에 열려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조정된(calibrated)’ ‘실용적(practical)’ 등의 표현으로 대북정책을 설명했다.

○ 완전한 비핵화 전제로 단계적 접근 추진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완전한 비핵화를 전제로 한 큰 틀의 로드맵 속에서 단계적 접근 방식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 101일 만에 대북정책 검토가 완료됐음을 가장 먼저 보도한 워싱턴포스트(WP)는 당국자들을 인용하거나 해석하는 방식으로 ‘단계적(phased)’이라는 표현을 4차례 반복해서 썼다. 다만 행정부 당국자들은 ‘한 단계씩(step-by-step)’이라는 표현은 쓰지 않고 있다. 비핵화의 최종 목표와 정의를 확정하지 않은 채 관련 조치들을 하나씩 쪼개 접근하려는 북한의 ‘살라미 전술’에는 말려들지 않겠다는 의도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대북제재와 관련해서는 “궁극적인 비핵화 목표 아래 신중하게 조율된 외교적 접근으로 (북한의) 특정한 조치에 대해 (제재) 완화를 제안할 준비가 돼 있다”고 한 당국자가 WP에 말했다. 그때까지 현재의 대북제재는 유지된다.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 등의 도발을 감행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상황에서 미국 본토에 대한 위협을 언급하는 발언도 나왔다. 한 고위 당국자는 WP에 “우리의 결론은 미국에 대한 위협을 제거한다는 목표하에 진행하는 실용적인 대북 접근”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행정부 새 대북정책에는 트럼프 행정부 내내 공석이었던 북한인권특사를 다시 임명하겠다는 내용도 담길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북한 정권의 인권침해 문제에 정면으로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어서 북한의 강한 반발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 싱가포르 합의 배제 안 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와 국무부의 대북정책 담당자들은 정책 검토 과정에서 스티븐 비건 전 국무부 부장관을 비롯한 전임 외교안보팀과도 협의를 지속해왔다고 한다. 한 고위 당국자는 “우리의 접근은 싱가포르 합의 및 과거 다른 합의들을 기반으로 할 것”이라며 ‘싱가포르 합의’도 언급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보여주기식 북-미 정상회담이나 실무정책이 뒷받침되지 않는 톱다운 방식의 대북 접근은 폐기하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직접 비핵화에 합의했던 싱가포르 합의의 일부 내용은 살려나가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북핵 전문가인 시그프리드 헤커 미국 스탠퍼드대 국제안보협력센터 선임연구원은 지난달 30일 미국의 북한전문 매체 38노스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핵무기 45개가량을 만들 수 있는 핵분열 물질을 갖고 있다”며 “북한이 플루토늄 25∼48kg을 생산했고, 고농축우라늄 600∼950kg가량을 보유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北, 한미 함께 겨냥해 협박-경고 담화

북한이 2일 강경한 담화를 연이어 발표하며 한미 양국을 동시에 겨냥했다.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대북 전단에 대해 “상응한 행동을 검토할 것”이라고 경고했고, 조 바이든 미 행정부의 새 대북 전략에 대해선 외무성이 나서 “대단히 큰 실수”라고 폄하하며 거부 의사를 밝혔다. 바이든 행정부가 본격적인 대북 행동에 나서기 전 북한도 날을 세우며 힘겨루기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 美 제재·인권 거론에 北 “상응 조치” 엄포
2일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권정근 북한 외무성 미국담당 국장은 담화를 통해 지난달 28일(현지 시간) 바이든 대통령의 의회 연설에 대해 “확실히 미국 집권자는 지금 시점에서 대단히 큰 실수를 했다”며 “시간이 흐를수록 미국은 매우 심각한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반발했다. 또 “미국이 주장하는 ‘외교’란 저들의 적대행위를 가리기 위한 허울 좋은 간판에 불과하며 ‘억제’는 우리를 핵으로 위협하기 위한 수단일 따름”이라고 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연설에서 ‘단호한 제재’를 언급하며 당분간 대북 제재를 완화할 뜻이 없다고 못 박은 데 따른 반발이다.

북한은 또 전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 달리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 인권 문제를 지속적으로 거론하는 것에 대해서도 “최고존엄을 건드리는 행위”라며 격한 반응을 내놨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미국이 우리의 최고존엄을 모독한 것은 우리와의 전면대결을 준비하고 있다는 뚜렷한 신호로 되며 앞으로 우리가 미국의 새 정권을 어떻게 상대해줘야 하겠는가에 대한 명백한 답변을 준 것”이라며 “우리의 경고를 무시하고 경거망동한 데 대하여 반드시, 반드시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김여정 역시 대북 전단을 살포한 탈북자들을 “쓰레기”라고 지칭하며 “남조선 당국은 탈북자 놈들의 무분별한 망동을 또다시 방치해두고 저지시키지 않았다. 남쪽에서 벌어지는 쓰레기들의 준동을 우리 국가에 대한 심각한 도발로 간주하면서 그에 상응한 행동을 검토해볼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6월 김여정은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전에도 사전 경고를 내놓은 바 있다.

○ 北, 경고 위해 SLBM 꺼내들까
북한은 3개 담화에서 모두 ‘상응 조치’를 언급하며 추가적인 대남·대미 압박을 예고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김여정의 담화는 미국의 대북 인권 비난 공세, 최고 존엄 훼손과 맞물리면서 매우 우려스러운 상황을 연출할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며 “이미 경색되어 있는 남북관계를 더욱 파탄으로 몰고 가면서 미국의 새로운 대북정책을 무력화시키려 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한미 정보당국 역시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 관련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지난해 10월 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초대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신형 SLBM ‘북극성-4형’을 공개했고, 올해 1월 당 대회 기념 열병식에서 SLBM ‘북극성-5형’까지 선보였다.

다만 북한이 상응 조치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외무성 당국자 명의로 대미 메시지 수위 조절을 했다는 점에서 향후 협상의 주도권을 쥐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도 있다.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바이든 행정부와의 본격적인 협상을 앞두고 북한이 협상력을 키우고, 첫 협상에서 (미국으로부터) 최대한 많은 것을 이끌어내기 위한 움직임”이라고 말했다.

워싱턴=이정은 특파원 lightee@donga.com / 이은택 기자 / 권오혁 hyuk@donga.com·신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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