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열 커지는 ‘일대일로’… 협약파기 이어 中겨냥 폭탄테러 발생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4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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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대사 투숙 호텔에 폭발물車 진입
최소 4명 사망… 대사 일행은 무사
시진핑이 사업 챙긴 과다르항 지역… “개발해도 中에만 이득” 불만 쌓여
中 “호주 조치는 도발적 행동” 비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집권 후 대대적으로 추진했던 경제 영토 확장 사업 ‘일대일로(一帶一路)’가 세계 곳곳에서 균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21일 호주가 일대일로 협약 파기를 선언한 데 이어 같은 날 일대일로의 핵심 국가인 파키스탄에서는 눙룽(農融·54·사진) 파키스탄 주재 중국대사를 노린 것으로 보이는 호텔 폭탄 테러까지 발생했다. 테러가 발생한 파키스탄 남서부 발루치스탄주에는 일대일로의 거점 과다르 항구가 있으며 대중국 경제 종속이 심해지는 것에 대한 현지 주민의 불만이 상당하다.

BBC 등에 따르면 21일 저녁 발루치스탄 주도 겸 최대 도시 퀘타의 고급 호텔에서 폭발물을 실은 차량이 주차장으로 진입한 뒤 폭탄이 터졌다. 운전자가 차량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는 목격자 증언을 감안할 때 자살폭탄 테러 가능성이 제기된다. 중국 매체 펑파이는 눙 대사가 발루치스탄 주지사 등 고위 관리들과 만찬을 갖고 호텔로 복귀하고 있었으며 그가 도착하기 불과 수 분 전에 폭발이 발생했다고 전했다.

셰이크 라시드 아흐마드 파키스탄 내무장관은 “테러로 최소 4명이 숨지고 12명이 다쳤다. 눙 대사를 단장으로 하는 중국인 대표단 4명이 이 호텔에 투숙했지만 폭발 당시 외부 행사에 참석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부상자 중 일부는 중상자여서 사망자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테러 몇 시간 후 파키스탄 탈레반은 성명을 내고 “이번 테러는 자폭 테러였다”며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정확한 테러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 파키스탄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에 근거지를 둔 탈레반과는 다른 조직이다.

발루치스탄은 아프가니스탄, 이란 등과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인도양에 면해 있다. 파키스탄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으로 꼽히며 탈레반 외에도 발루치스탄해방전선(BLF), 발루치스탄해방군(BLA) 등 여러 무장단체가 중앙정부와 대립하고 있다. 중국은 2001년 파키스탄과 계약을 맺고 당시만 해도 허허벌판에 불과했던 과다르 항구를 개발해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 등에 맞먹는 세계적 물류 허브로 키우겠다는 뜻을 밝혔다. 계약 때부터 향후 40년간 항구 운영 수입의 91%가 중국에 돌아가고 파키스탄은 나머지 9%만을 얻는 구조여서 파키스탄 내 비판 여론이 높았다. 20년이 흐른 지금도 개발이 지지부진한 상태다.

시 주석은 2015년 직접 파키스탄을 찾아 중국 본토에서 과다르항까지 이어지는 철도, 도로 등을 개설하는 460억 달러(약 53조 원) 규모의 ‘중국-파키스탄 경제회랑 건설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중국이 투자라는 명목하에 인프라를 건설해 주고 돈까지 빌려준다 해도 이로 인한 이득은 고스란히 중국이 회수하는 불리한 구조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중국은 일대일로를 21세기 육해상 실크로드 사업이라고 칭송하지만 비판론자들은 ‘빈곤국을 사실상 중국의 경제식민지로 만드는 사업’이라고 혹평하는 이유다. 이번 테러 또한 이런 반중 정서의 연장선상에서 벌어진 것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된다.

21일 호주 연방정부 역시 빅토리아 주정부가 중국과 체결한 일대일로 협정을 파기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일대일로 추진 국가가 속속 불만을 제기하자 중국 또한 반발하고 있다. 왕원빈(汪文斌)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2일 “일대일로는 ‘채무 함정’이 아니다. 중국은 일대일로 참여국과 빈곤 타파 및 성장의 길로 함께 나아가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호주의 조치는 중국을 겨냥한 또 다른 도발적 행동”이라고 비난했다.

베이징=김기용 특파원 kky@donga.com / 조유라 기자
#일대일로#협약파기#폭탄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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