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빛날 때, 창업 초심으로… 새로운 도전 나선 IT 황제들[글로벌 포커스]

조종엽 기자 , 신아형 기자 , 도쿄=박형준 특파원 입력 2021-02-20 03:00수정 2021-02-20 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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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조스-손정의는 왜 CEO직을 내려놓을까 세계적 정보기술(IT) 기업의 창업자가 속속 최고경영자(CEO)와 회장 자리를 내놓고 있다. 이달 2일 세계 최고 부호인 미국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 창업자 겸 CEO(57)가 “올해 3분기(7∼9월) 중 CEO에서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지난달 26일 재일교포 3세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64) 역시 “2021 회계연도가 시작되는 4월 1일 회장에서 물러난다”고 공개했다.

앞서 2019년 구글의 동갑내기 창업자 래리 페이지(48)와 세르게이 브린(48) 역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45세인 2000년 CEO에서 사임한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는 2014년 이사회 의장직마저 내놓고 빌앤드멀린다게이츠 자선재단 일에 바쁘다.

IT 거물 창업자들이 한창 나이에 스스로 왕좌에서 내려오는 이유는 뭘까. 한 사람이 감당하기에 기술 변화 속도가 너무 빠른 요즘, 창업자는 중장기적 혁신 과제에 집중하고 기존 사업 관리는 신임 CEO에게 맡기는 일종의 ‘역할 분담’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신동엽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창업’보다 ‘수성’이 어렵다는 말이 있듯 공격적 성장을 추구하는 창업자는 수성을 위해 안정적 관리에 뛰어난 사람을 CEO로 임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 베이조스 “우주사업 주력”…머스크와 경쟁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베이조스는 최근 수년간 CEO의 일상 업무에 그다지 관여하지 않고 특정 제품의 개발에 치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비록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그는 2014년 아마존이 출시한 스마트폰 ‘파이어폰’에 깊게 관여했다. 시장에 안착한 인공지능(AI) 스피커 ‘에코’(알렉사) 역시 베이조스의 착상에서 비롯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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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세세한 회사 일은 알지 못하는 모습을 종종 보였다. 지난해 7월 그가 IT 공룡의 시장 독점 문제로 하원에 출석했을 때 답변 모습을 보고 “아마존의 주요 서비스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잘 모르는 듯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베이조스는 직원에게 보낸 사퇴의 변에서 2000년 설립한 우주개발기업 블루오리진, 2013년 인수한 워싱턴포스트(WP), 지난해 설립한 환경보호기금 ‘베이조스 지구기금’ 등에 전념하겠다고 밝혔다. 이 중 블루오리진이 향후 그의 주력 업무가 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베이조스는 자신이 보유한 아마존 주식 일부를 매각해 연간 예산이 10억 달러(약 1조1000억 원)에 이르는 블루오리진의 운영 자금을 댔다. 매주 수요일 열리는 블루오리진 업무 회의에도 참석했다. 그는 2018년 “인류 문명을 역동적으로 만들 블루오리진이 아마존보다 나에게 더 중요할 것”이라며 애착을 보였다.

베이조스가 자신을 세계 최대 부호로 만들어준 물류사업 대신 우주사업에 인생 2막을 걸기로 한 것은 자신에 이은 세계 2위 부호이자 미 전기차 업체 테슬라의 창업자인 일론 머스크(50)와의 경쟁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머스크가 설립한 우주회사 ‘스페이스X’가 블루오리진보다 더 많은 성과를 내고 있다는 점도 베이조스의 승부욕을 자극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스페이스X는 지난해 유인(有人) 로켓 발사에 성공했다. 블루오리진도 올해 4월 유인 로켓 발사를 계획하고 있다. 두 회사는 화성 탐사 등을 두고도 불꽃 튀는 경쟁을 벌이고 있다.

○ 손정의 “AI와 비전펀드에 집중”

손정의 회장 역시 현재 주력 사업인 통신업 대신 AI에 치중하고 싶다는 뜻을 나타냈다. 손 회장이 2004년 인수해 과거 일본텔레콤에서 사명을 바꾼 소프트뱅크는 현재 NTT도코모, KDDI와 함께 일본 3대 통신사로 군림하고 있다. 1981년 손 회장이 창업한 소프트뱅크그룹의 핵심 회사이기도 하다. 그는 2006년 영국 이동통신업체 보다폰저팬을 2조 엔에 인수하고, 2012년 미국 3위 통신기업 스프린트를 200억 달러에 인수하는 등 세계 각국의 통신업체를 사들이는 데 주력했다.

그가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직은 유지하면서 소프트뱅크 회장 자리를 내놓은 것은 AI 및 비전펀드 사업에 주력하기 위해서일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손 회장은 2019년 12월 도쿄에서 열린 한 포럼에서 “AI 시대의 도래는 피할 수 없다. ‘늑대의 야성’을 지니고 AI 시대를 준비하는 사람만이 밝은 미래를 맞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AI 시대의 가장 빛나는 기술과 기업을 모아놓은 것이 자신의 비전펀드라며 “300년을 이어갈 기업을 만들겠다”고 장담했다. 손 회장이 2016년 AI, 로봇 등에 필수불가결한 반도체를 생산하는 영국 반도체업체 ARM을 인수한 것도 AI 사업에 대한 그의 열의를 보여준다는 관측이 나온다.

해외 유명 IT 스타트업에 주로 투자해온 비전펀드의 투자처 선정이 손 회장의 직관에 전적으로 의존해 왔다는 점도 ‘소프트뱅크 실무’라는 짐을 내려놓으려는 결정을 부추긴 것으로 보인다. 변동성이 큰 IT 사업의 특성상 비전펀드의 실적이 소프트뱅크그룹 전체의 실적을 좌지우지할 때가 많다는 점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지난해 1분기(1∼3월) 비전펀드는 무려 1조1159억 엔의 손실을 냈다. 핵심 투자처였던 미 사무실 공유 기업 위워크, 미 차량 공유 업체 우버 등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았기 때문이다. 이런 위험 요인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탄탄한 내수 시장을 보유한 소프트뱅크 업무는 후순위로 두고 비전펀드에 집중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 후임자는 관리형

거물 창업자의 후임자로 선정된 인물이 관리형, 실무형 인재라는 점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 연예인 못지않은 인지도를 보유한 창업자와 달리 업계 밖에서는 그다지 유명하지 않지만 각자의 분야에서는 전문성과 능력을 한껏 인정받고 있는 인물이란 뜻이다.

손 회장이 소프트뱅크의 차기 CEO로 발탁한 인물은 통신기술 전문가 미야카와 준이치(宮川潤一·56) 부사장 겸 최고기술책임자(CTO)다. 미야카와는 하나조노대를 졸업하고 IT 업계에서 활동하다가 2003년 소프트뱅크 자회사의 이사로 뽑혀 손 회장과 연을 맺었다. 꼼꼼한 일처리로 손 회장의 신임을 얻어 승승장구한 그는 소프트뱅크가 보다폰저팬과 스프린트를 인수할 때 실무를 담당했고 회사의 5세대(5G) 네트워크 사업에도 깊숙이 관여했다. 소프트뱅크가 도요타자동차와 공동 출자한 모네테크놀로지 사장도 겸해 왔다. 즉, 통신 전문성만 보면 창업자 손 회장보다 몇 수 위라는 평가다.

2019년 구글 모회사 알파벳의 CEO에 오른 인도계 순다르 피차이(49) 역시 대표적 실무형 인재로 꼽힌다. 펜실베이니아대 와튼경영대학원을 졸업했고 2004년 구글에 입사해 크롬 웹브라우저 개발을 주도했다. 페이지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기 전부터 조직 관리, 인사 등을 피차이에게 맡겼다.

CEO가 된 후 피차이는 불필요한 투자를 줄이고 ‘선택과 집중’에 주력했다. 그는 지난해 5월 알파벳 자회사 ‘사이드워크랩스’가 캐나다에서 추진하던 스마트시티 사업을 접었다. 3개 부문으로 나뉘어 있던 통화 및 문자메시지 앱 개발 부문도 하나로 통합했다.

아마존의 후임 CEO로 지명된 앤디 재시 아마존웹서비스(AWS) CEO(53)는 실무와 혁신 능력을 겸비한 인재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재시는 하버드대와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하고 1997년 아마존에 입사했다. 2002년부터 1년 반 동안 베이조스를 밀착 수행했고 현재 아마존의 캐시카우로 꼽히는 AWS 사업을 주도해 능력을 인정받았다. AWS는 컴퓨팅, 스토리지, 데이터베이스 등 아마존의 기술 인프라를 다른 회사 등에 임대하는 서비스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재시는 2003년 소프트웨어 개발 지연의 원인을 파악하라는 베이조스의 지시를 받고 조사를 벌이다가 AWS 사업에 착안했다. 지난해 기준 AWS 부문의 매출은 453억 달러, 영업이익은 135억 달러에 달한다. 매출은 아마존 전체의 12%에 불과하지만 영업이익의 60%를 담당하는 알짜 사업부서다.

‘존재 자체가 애플’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주의 사망 후 애플 또한 더 큰 성장을 이뤄냈다. 애플은 지난해 8월 미 기업 최초, 세계 전체로는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정유사 아람코에 이어 두 번째로 시가총액 2조 달러(약 2200조 원) 고지를 돌파했다. 매킨토시컴퓨터, 아이팟, 아이폰 등 제품의 혁신으로 세계를 놀라게 하는 것을 즐겼던 ‘천재 창업자’ 잡스와 달리 ‘관리의 화신’ 팀 쿡 CEO(61)는 휴대전화를 둘러싼 거대한 서비스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주력했다.

‘앱스토어’로 대표되는 서비스 산업은 현재 아이폰 못지않은 애플의 핵심 수익원이다. 2007년부터 최고운영책임자(COO)로 애플의 안살림을 맡았으며 잡스 사후 CEO가 된 쿡이 이룬 독자적 성과란 평가가 나온다. 쿡은 애플에 합류한 지 7개월 만에 30일 치에 달했던 재고를 6일 치로 줄이며 관리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 CEO 사퇴 트렌드 이어질 것

전문가들은 유명 창업자의 CEO 사퇴 현상이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한다. 회계, 조직 관리, 인사, 성장전략 수립, 각종 대외 활동까지 담당해야 하는 CEO 직책의 특성이 혁신과 도전 성향이 강한 창업자와 잘 맞지 않으며 제2의 도약을 위해서는 이들이 일상 업무에서 벗어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부 교수는 “사람의 인생에도 주기가 있듯 기업 역시 마찬가지”라며 “초기에는 성장동력을 공급해 주는 사람이 필요하고,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 기업을 잘 관리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이런 인물의 순환 구조가 정착돼야 신사업이 가능해지고 기업 또한 윤택한 성장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다. 여준상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 역시 “나이를 떠나 특정 지위와 영역에 오래 머물러 있다 보면 혁신 동력과 민첩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조금만 뒤처져도 도태되는 세상에서 혁신을 계속해야 한다는 절박감이 창업자의 추가 도전을 부추긴다고 설명했다.

송재용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창업 마인드가 강한 오너 경영자 입장에서는 기존 주력 사업을 챙기는 일에 큰 의미를 못 느낄 수 있다. 거물 사업가가 한정된 시간을 일상 업무 대신 미래 성장동력을 위해 쓰는 것이 사회 전체로도 나쁠 게 없다”고 진단했다.

창업자가 특정 직책에서 물러난다고 해도 해당 기업에 미치는 이들의 영향력과 존재감은 대체 불가라는 지적도 나온다. 베이조스가 CEO 사퇴 후 자신의 이사회 의장 직함을 통상적 영문 호칭, 즉 ‘Chairman of Board’ 대신 ‘Executive Chairman’(경영자 회장)으로 정하겠다고 밝힌 것도 ‘경영’이라는 단어를 강조해 앞으로도 회사 업무에 깊숙하게 개입할 뜻을 밝힌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송재용 교수는 “일상 업무를 미주알고주알 챙기지는 않더라도 경영 성과가 나빠지면 지분을 가장 많이 가진 오너로서 개입하겠다는 뜻”이라고 진단했다.

조종엽 jjj@donga.com·신아형 기자 / 도쿄=박형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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