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비초크 독살 시도 전날…러 독극물팀도 나발니 호텔 인근에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2월 15일 16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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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비행기에 탔다.”

8월 13일 오전 9시. 러시아 정부를 비판하는 반부패재단(FBK) 소속 마리아 페브치흐 씨(33)가 모스크바에서 시베리아의 노보시비르스크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68)의 최대 정적인 야권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 전 러시아진보당 대표(44)의 최측근이다.

마리아의 뒤에는 러시아 정보기관 연방보안국(FSB) 소속 요원인 오레크 타야킨이 따라붙었다. FSB는 옛 소련 비밀경찰인 KGB의 후계조직으로 타야킨은 독극물 전문이다. 이날 다른 요원들도 노보시비스크에 집결했다. 하루 뒤 나발리는 이곳을 찾았고, 일주일 뒤인 20일 화학무기 노비초크에 돌연 중독돼 죽음 문턱까지 갔다.

8월 세계 이목을 모았던 나발니에 대한 독살 시도가 FSB 독극물팀에 의해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CNN, 독일 슈피겔, 영국 매체 벨링캣 등이 14일(현지 시간) 공동 탐사보도를 통해 보도했다. 이들 언론은 각종 통화와 여행 기록, 서류 등을 분석해 이런 결과를 내놨다.

이에 따르면 나발니와 그 측근들은 FSB의 감시대상 1호였다. 특히 FSB 내 의사, 독극물 전문가, 응급 의료요원 등 6¤10명이 ‘팀’을 구성해 2017년부터 나발니를 조직적으로 미행했다.

나발니는 8월 20일 시베리아의 톰스크에서 모스크바로 이동중인 기내에서 독극물 중독 증세를 보이며 혼수상태가 됐다. 이후 독일 병원으로 이송돼 회복됐다. 나발니 측은 러시아 당국이 독살을 시도했다고 주장하지만 러시아 당국은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보도에 따르면 나발니의 독살시도가 이뤄지기 전날인 8월 19일 나발니가 투숙한 호텔 근처에 FSB 독극물팀 요원 5~6명이 배치됐다. 이들은 가짜 신분을 만들어 활동했으며, 대포폰으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특히 나발니가 혼수상태에 빠진 후 FSB 지도부와 독극물팀 간 통화가 연이어 이뤄졌다. 나발니 독살 시도 전 FSB 수장인 알렉산드르 보르트니코프 국장이 독극물팀 지휘부와 정기적으로 연락했고, FSB의 고위간부인 블라디미르 보그다노프는 푸틴 대통령의 측근과 통화했다.

이런 가운데 나빌니의 부인인 율리아를 상대로 한 독살시도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율리아는 러시아 칼리닌그라드 한 호텔에서 휴가를 보낸 후 7월 6일 갑작스런 어지러움 등 이상증세를 겪었는데, 당시 호텔에 독극물팀 3명이 체류했던 것이 확인된 것. 독일에 체류 중인 나발니는 CNN에 “러시아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파리=김윤종 특파원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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