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위스콘신주 커노샤에서 비무장 흑인 제이컵 블레이크 씨(29)가 백인 경찰의 총에 맞아 중태에 빠진 사건이 발생하면서 11월 대선을 앞두고 인종차별 문제가 다시 불거지고 있다. 야당 민주당의 대선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은 “총격이 미국의 영혼을 관통했다. 즉각 진상을 조사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라”며 이를 대선 쟁점으로 삼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24일 커노샤에는 주 방위군까지 투입됐지만 곳곳에서 통금 시각인 오후 8시를 훌쩍 넘긴 상황에서도 수백 명의 시위대가 경찰과 대치했다. 이들은 전날 시위로 불에 탔던 트럭을 다시 불태웠고 경찰도 최루탄을 발사하며 맞섰다. 이날 뉴욕, 워싱턴, 미니애폴리스 등 미국 곳곳에서 블레이크의 이름을 외치며 경찰 대응 및 인종차별을 규탄하는 시위가 잇따랐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을 ‘제2의 플로이드 사태’로 부르고 있다. 5월 25일 위스콘신과 인접한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비무장 흑인 남성인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 경관의 잔혹 행위로 숨진 사건과 비슷하다는 의미다. 당시 백주대낮에 여러 시민이 플로이드 사망을 지켜봤고, 이번에는 블레이크의 어린 세 아들이 아버지의 총격 장면을 목격했다는 점이 시위대의 분노를 키우고 있다.
정치권은 이번 사건의 파장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대선 선거인단 538명 중 10명이 걸린 위스콘신은 쇠락한 공업지대(러스트벨트)의 대표 지역이자 대선 결과를 좌우할 핵심 경합주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2016년 대선 당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의 낙승이 예상됐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0.7%포인트 차로 이겨 선거인단 10명을 가져갔다. 이에 민주당은 올해 전당대회를 위스콘신에서 개최하기로 했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거의 대부분을 화상 회의로 대체했다.
바이든 후보는 이날 성명을 내고 “인종차별은 미국의 고질적 문제다. 인간은 모두 평등하며 모두가 평등한 대우를 받는 이상을 위해 투쟁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의 장남 트럼프 주니어는 ‘블레이크가 가정 폭력 및 성범죄 전력이 있으며 경찰을 공격했던 전과도 있다’는 주장을 담은 글을 리트윗했다. 그는 커노샤 현지에서 차량이 불타는 영상을 공유하며 ‘평화로운 시위’라고 조롱하는 글도 남겼다.
토니 에버스 위스콘신 주지사는 민주당 소속이지만 주의회의 과반은 공화당이 차지하고 있다. 에버스 주지사가 “블레이크가 미국과 위스콘신에서 공권력의 총에 맞은 첫 번째 흑인이 아니다”라며 인종차별 가능성을 지적하자 경찰 노조와 주내 공화당 정치인들은 “무책임하고 자극적인 발언을 멈추라”며 반발했다.
사건의 구체적인 정황도 서서히 나오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 등은 블레이크가 피격 당시 차량이 긁힌 것을 놓고 싸우는 여성들을 말리고 있었고, 경찰이 엉뚱하게 블레이크가 말썽을 일으키고 있다고 판단해 총격을 가했다고 보도했다. 병원에서 회복 중인 그의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총을 쏜 경찰 두 명은 휴직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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