싼샤댐 붕괴설로 민심 흉흉한데…시진핑, 피해현장 대신 동부로 달려간 이유는?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7월 31일 17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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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남부를 중심으로 6월 초부터 두 달째 이어지고 있는 80년 만의 대홍수로 중국이 휘청거리고 있다. 지금까지 적어도 158명이 숨졌고, 5481만 명 이상의 수재민이 발생했다. 경제 피해 규모는 1444억 위안(약 24조6000억원)에 달한다. 홍수 피해가 집중된 창장(長江·양쯔강)강 일대의 수량을 조절하는 세계 최대 수력발전 댐인 싼샤(三峽)댐의 수위도 크게 올라가면서 ‘붕괴설’이 확산되고 있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지도력 또한 시험대에 올랐다. 미중 갈등,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코로나19발 경기침체, 장기 집권 및 권위주의 통치 방식에 대한 피로감이 상당한 와중에 홍수까지 겹치자 민심이 흉흉하다. 일각에서는 시진핑 체제의 향방이 현 상황을 어떻게 수습하느냐에 달렸다고 보고 있다.


●태평성대의 조건 ‘장강 치수’

중국에는 북부 황허(黃河)강, 남부 창장강이란 양대 강이 있다. 창장강 남쪽에 자리한 안후이(安徽), 장시(江西), 후베이(湖北), 쓰촨(四川), 윈난(雲南), 구이저우(貴州) 성 등은 살기 좋은 땅의 상징이다.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온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한국 속담에 등장하는 강남이 바로 이 창장강 이남을 뜻한다.

강준영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연구센터장은 중국인이 창장강을 ‘익하’(益河·이로운 강), 황허를 ‘해하’(害河·해로운 강)로 부른다고 설명했다. 그는 “창장강 일대에는 잦은 범람으로 퇴적물이 풍부하게 쌓인다. 이로 인해 토지가 비옥해지고 식량 생산이 늘어나 이로운 강이란 이름이 붙었다”며 “상당 부분 삼모작이 가능한 창장강 일대에서 중국 전체 식량의 40%가 생산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고 말했다. 특히 사람과 물자가 몰려드는 곡창지대의 특성 상 창장강 그 자체가 중국 전체의 물류 플랫폼 역할도 담당한다.

이렇듯 남다른 의미를 지닌 창장강의 치수(治水)는 예로부터 지도자의 필수 덕목으로 꼽혔다. ‘물을 다스리는 자가 천하를 얻는다’는 중국 고사가 그냥 나온 게 아닌 셈이다.

창장강은 20세기 이후 줄곧 대홍수와 대형 인명피해에 시달렸다. 원래도 범람이 잦고 고온다습한 지역이었는데 온난화 등이 겹치자 강수량이 크게 늘었다. 그런데도 홍수를 막을 시설은 변변치 않아 1931년과 1954년 대홍수 때는 각각 15만 명, 3만 명이라는 엄청난 인명이 희생됐다.

쑨원(孫文), 장제스(蔣介石), 마오쩌둥(毛澤東) 등 중국 근현대 지도자가 창장강 치수를 위해 댐을 지으려 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격동의 역사로 다른 현안이 더 급했던 이들 모두 뜻을 이루지 못했다. 1992년에야 당시 리펑(李鵬) 총리 주도로 홍수 방지, 수력 발전, 항만 물류 등의 이점을 내세워 싼샤댐 건설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때는 물론이고 지금도 환경 파괴, 문화재 수몰 논란 등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장화 신고 달려간 장쩌민 vs 안 보이는 시진핑

이번 홍수로 흉흉해진 민심을 더 자극하는 것은 아직까지 피해 현장을 찾지 않은 시진핑 주석의 태도다. 장강 대홍수가 발생했던 1998년 여름 당시 장쩌민(江澤民) 주석과 주룽지(朱鎔基) 총리는 현장으로 곧장 달려갔다. 장 주석은 후베이성 징저우(荊州) 등을 시찰하며 주민을 격려했다. 그해 9월로 예정됐던 일본 방문 일정도 연기한 채 복구에 매달렸다.

2007년 장강에서 또 홍수가 발생했다. 후진타오(胡錦濤) 주석과 원자바오(溫家寶) 총리 역시 피해가 극심했던 충칭(重慶) 등을 찾아 이재민을 위로했다. 이들 대부분은 장화를 신고 수해 현장에 나타났다. 직접 메가폰을 잡고 복구 작업을 독려했으며 피해를 입은 허름한 농가를 찾아 이재민을 껴안고 위로했다.

이를 단순한 사진찍기용 행사로만 보기는 어렵다. 대형 자연재해 때는 치자(治者)에게 모든 비난이 쏠릴 수밖에 없으며, 민심을 다독이는 것이 최우선임을 본능적으로 알았기에 장화 착용 등을 마다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반면 시 주석은 지난 두 달 간 홍수에 관한 지시를 불과 두 번 내렸다. 그는 6월 28일과 지난달 12일 “방재에 힘쓰라”는 원론적 언급만 했다. 리커창(李克强) 총리 또한 지난달 6일에야 구이저우성 장커우(江口)현을 찾았다. 당국은 리 총리의 굽 있는 신발에 진흙이 묻은 사진을 공개했지만 홍수 직후 현장을 찾았던 전임 지도자에 비해 현장 방문 시기가 늦었으며, 굽 있는 신발 착용이 적절치 않았다는 비판을 피하긴 어려워 보인다.

시 주석은 지난달 22~24일 피해 지역과 정반대 지점인 동북부 지린(吉林)성을 찾았다. 그는 옥수수 표준화 생산기지와 농기계 회사 등을 방문해 증산을 독려했다. ‘샤오캉(小康·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사회를 위한 민생 챙기기 일환이라지만 초유의 홍수 피해를 입은 남부를 외면하고 동북부부터 찾았다는 비판도 상당하다.

일각에서는 그의 옥수수 생산기지 방문을 세계 패권 및 미국산 농산물 수입 문제로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는 미국을 겨냥한 행보로 보고 있다. 하지만 중국 내 불만이 커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강준영 교수는 “서구에는 ‘중국이 얼마든지 홍수 피해를 수습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려 했겠지만 피해 주민 입장에서는 ‘물난리로 다 죽게 생겼는데 저게 뭐냐’고 반발할 수 있다”며 “자연재해를 지도자발 인재(人災)로 치부하는 동양 정서를 간과했다”고 진단했다.

시 주석은 올해 초 코로나19가 창궐할 때도 후베이성 우한(武漢) 방문을 미루다 3월 10일에야 우한을 찾았다. 우한의 코로나19가 가장 심각했던 1월 말 우한을 방문한 사람 역시 그가 아닌 리 총리였다. 이정남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교수는 “시 주석이 대형 재해 와중에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불만이 나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일부 소셜미디어에는 리 총리가 시찰 중 빗길에 미끄러지는 동영상이 등장했다가 곧 삭제됐다. 얼핏 보면 이번 홍수 현장인 듯 보이나 그가 2014년 8월 지진이 발생한 윈난성을 찾았을 때의 모습이다. 남부를 외면한 듯한 수뇌부 전체에 대한 불만을 일종의 가짜 동영상을 통해 표출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된다.


●싼샤 붕괴설로 더 흉흉한 민심

이 와중에 싼샤댐의 붕괴설이 끊이지 않아 민심이 더 동요하고 있다. 이번 홍수로 싼샤댐이 대규모 방류를 계속하면서 상하이(上海), 난징(南京) 등 장강 하류 대도시 주민들의 불안감이 상당하다.

한국어로 ‘삼협’(Three Gorges)인 이 댐은 말 그대로 취탕(瞿塘), 우(巫), 시링(西陵)이란 3개 협곡 사이에 위치해 있다. 1994년 착공돼 14년 간 1800억 위안(약 30조7000억 원)의 공사비를 투입해 만들어졌다. 최대 저수량은 393억t으로 미국 후버댐(320억t)보다 73억t이 많다.

중국은 매년 6~8월 장마철에 대비해 5월부터 싼샤댐 방류를 시작했다. 홍수 때 댐이 넘칠 것을 대비해 미리 댐을 적절히 비워 두는 것이다. 하지만 올해 상황은 다르다. 싼샤댐의 상류와 하류에서 모두 홍수가 발생하는 바람에 일종의 진퇴양난에 처했다. 방수량을 늘리면 인구 밀집지역인 하류 지역의 피해가 늘고, 방수량을 줄이면 상류의 피해가 증가한다. 이로 인해 싼샤댐의 존립 근거인 홍수방지 기능에 회의론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지난달 28일 장강 관리국에 따르면 이날 댐 수위는 162.45m를 기록했다. 홍수 수위인 145m는 오래 전 돌파했고 최고 수위인 175m도 불과 12m 남겨두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댐 설계에 심각한 착오가 있다. 붕괴 위험이 있다”는 유명 댐 전문가 왕웨이뤄(王維洛) 박사의 경고, 댐이 뒤틀린 것처럼 보이는 구글어스 사진 등이 겹치자 주민 공포가 커졌다.

이를 반영하듯 최근에는 싼샤댐 붕괴 시뮬레이션 영상까지 등장했다. 영상에는 댐이 무너진 뒤 넘쳐난 물이 시속 100㎞의 속도로 인근 도시를 휩쓰는 장면이 담겼다. 댐에서 50km 떨어진 후베이성 이창(宜昌)시는 불과 30분 만에 10m 높이의 물에 잠겼다. 300km 거리인 우한도 순식간에 5m 높이의 물에 침수됐다. 당국은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이 영상을 속속 삭제하고 있지만 우려는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붕괴하면 재앙…지도력 타격 불가피


중국 당국은 줄곧 싼샤 붕괴설을 일축하고 있다. 이수곤 전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 역시 “세계 최대 규모인 싼샤댐이 무너지면 피해가 너무 크다. 절대 붕괴하도록 놔두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싼샤댐 건설 후 이 일대의 지진이 빈번해졌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미국 세인트루이스대 연구팀은 2018년 미 지구물리학회(AGU)에 “댐 수위가 150m 이상이면 인근 지역의 월 평균 지진 횟수가 댐 완공 전보다 7,8배 증가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철근 덩어리인 댐, 댐 안에 있는 엄청난 양의 물이 지반에 무지막지한 압력으로 작용해 암석층을 깨트리고, 이 깨진 지층에서 흘러나온 물이 지표면에 스며들어 단층 활동을 일으켰다는 의미다.

2017년 6월과 같은 해 8월 쓰촨성에서 산사태와 지진이 잇따라 발생한 것도 댐의 수압 때문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당시 싼샤댐의 수위는 156m였고 이 단층선에서 불과 500m 떨어진 곳에 또 다른 대형 댐인 쯔핑푸(紫坪浦)가 위치해 있다. 미 항공우주국(NASA)은 이미 2005년 “최대 400t에 이르는 싼샤댐 저수량의 엄청난 무게가 지구 자전축에도 영향을 미쳐 자전축이 약 2㎝ 이동할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놨다.

만에 하나 싼샤댐이 무너진다면 후폭풍은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우선 최대 4억~6억 명의 이재민이 발생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인명 피해 역시 엄청날 것으로 예상된다. 창장강 하류 인근의 원자력발전소가 무너지면 한국 일본 등도 방사능 피해에서 자유롭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제기된다.

엄청난 양의 강물이 우리나라 해역으로 유입되면 국내 수산 양식업도 피해를 입을 수 있다. 해수부에 따르면 지난달 14일 기준 장강 유출량은 과거 연 평균(4만4000t)보다 배에 가까운 초당 8만2000t이다. 2003년 이후 17년 만의 최고치다. 바닷물에 민물이 섞이면 염도가 떨어져 어패류와 양식어류가 폐사한다.

일각에서는 중국 현대화의 상징인 싼샤댐이 붕괴설에 시달리고, 홍수에 관한 국민 불만이 늘어나는 것만으로도 시진핑 리더십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공산당의 무능과 정책 실패를 자인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또 코로나19가 창궐한 올해 1분기에 중국 경제는 분기 성장률을 집계한 1992년 이후 최초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1분기 ―6.8%에서 2분기에 3.2%로 반등하긴 했지만 홍수 피해가 본격화할 3분기에 다시 둔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도 이런 분석에 설득력을 더한다. 이정남 교수는 “가뜩이나 경제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홍수라는 악재를 만나 시진핑 주석이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며 “이번 사태로 흉흉해진 민심을 다독여야 장기 집권의 틀을 다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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