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지역구 도로사업 ‘손타쿠’ 논란 日차관급 사임…“사실상 경질”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5일 23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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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의중을 헤아려 알아서 기던 일본 차관급 공무원이 5일 사임했다. “아베 총리의 지역구 도로사업을 내가 알아서 가능하게 했다”고 공개적으로 말하면서 언론과 야당의 집중포화를 받았고, 결국 사임할 수밖에 없었다.

아사히신문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쓰카다 이치로(塚田一郞) 국토교통성 부대신(副大臣)은 1일 후쿠오카(福岡)현 기타큐슈(北九州)에서 여당 추천 후쿠오카현 지사 후보에 대한 지지연설을 위해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혼슈(本州)와 규슈(九州)를 잇는 도로사업 조사와 관련해 “국가가 직접 관할하는 조사로 내가 끌어올렸다”고 말했다. 이어 “내가 면담했던 여당 간부가 ‘총리와 부총리의 지역사업’이라고 했다. 총리나 부총리가 그런 말을 할 수 없으니 내가 ‘손타쿠(忖度)’ 했다”고 말했다.

손타쿠는 구체적으로 지시를 받지는 않았지만, 윗사람이 원하는 대로 알아서 행동한다는 의미다. 아베 총리의 선거구인 야마구치(山口)현 시모노세키(下關)시와 과거 중선거구 시절 아소 부총리의 지지기반이었던 기타큐슈시를 연결하는 도로사업을 자신이 눈치껏 알아서 진행시켰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다.

이 도로사업은 2008년에 추진 보류로 결론난 사업인데, 2017년에 지방자치단체 예산과 국가 지원금으로 조사가 재개됐다. 일본 정부는 지난달 말 국가가 조사비용을 전액 부담하기로 결정했다.

쓰카다 부대신은 2일 “발언이 사실과 다르므로 철회하고 사죄한다”고 밝혔다. 다음날에도 국회에서 재차 “국민 여러분께 사과한다. 많은 사람이 모인 모임이어서 분위기에 휩쓸려 잘못된 발언을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언론과 야당은 쓰카다 부대신의 발언에 대해 집중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6개 야당의 국회대책위원장들은 3일 국회에서 모여 “발언 철회와 사죄로 끝낼 문제가 아니다”며 쓰카다 부대신의 사임을 요구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결국 쓰카다 부대신은 4일 아소 부총리 겸 재무상에게 사임 의향을 밝힌 데 이어 5일 사표를 제출했다. 그는 “행정에 대한 신뢰를 손상해 국정의 정체를 초래했다”며 사임 이유를 밝혔다.

교도통신은 “지난달 하순 시작된 통일지방선거와 향후 중의원 일부 선거구에서의 보궐선거, 여름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쓰카다 부대신이 사실상 경질된 것”이라고 보도했다.

아베 총리는 애초 쓰카다 부대신의 발언을 크게 문제삼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여러 선거를 앞두고 자민당 내부에서조차 “쓰카다 부대신 스스로 그만둬야 한다”는 강경 의견이 나오자 아베 총리도 경질로 기운 것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는 5일 저녁 총리관저에서 기자들에게 “행정에서 국민의 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전 각료, 부대신과 정무관(차관급)은 이번 기회에 다시 정신을 차려 국민의 부탁에 전력으로 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분위기에 휩쓸렸다’는 쓰카다 부대신의 해명이 설득력이 있다고 보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아베 총리는 “분위기가 어떻든 간 정치인은 진실을 말해야 한다”고 답했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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