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국가비상사태 선포, ‘보수 라디오 5인방’ 손에서 나왔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2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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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체 제작 시사프로그램 진행하며 보수 이념 정책반영에 영향력
트럼프 “그들의 의견 존중” 밝히며 회견서 일일이 거명 이례적 칭찬
5인, 탁월한 언변 무기로 선동, 트럼프 마음에 안들면 거칠게 공격


“국가비상사태 선포 결정은 몇몇 ‘보수 미디어 여론주도자’의 영향을 받았나.”(기자)

“숀 해니티, 앤 콜터, 터커 칼슨, 로라 잉그러햄, 러시 림보. 나는 그들의 의견을 존중한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15일 미국 워싱턴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열린 국가비상사태 선포 기자회견에 참석한 기자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공식 기자회견에서 보수성향 언론인 5명을 일일이 언급했기 때문. 미 대통령이 공식 석상에서 특정 언론인을 칭찬한 것은 이례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5명에게 ‘폭풍 칭찬’을 퍼부었다. “해니티는 내가 하는 일마다 지지해주는 고마운 친구.” “림보는 혼자 세 시간을 떠들 만큼 아는 것이 많다.” “잉그러햄과 칼슨은 나에게 좋을 일을 많이 해줬다.” 대통령의 파격적 언론관에 워싱턴 정가도 할 말을 잃은 분위기다.

이날 그가 콕 집어 칭찬한 5명은 ‘보수 라디오 퍼스낼리티 5인방’으로도 불린다. 트럼프의 주요 지지자인 중·장년층에게 익숙한 매체인 라디오에서 저녁 황금시간대에 자신의 이름을 걸고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이들은 특정 라디오방송에 전속된 것이 아니라 프로그램을 자체 제작해 미 전역 라디오 방송국에 판매하는 ‘신디케이트’ 방식을 쓴다. 칼슨, 잉그러햄, 해니티는 라디오에서 성공해 지상파 TV로 진출했다.

뉴욕타임스(NYT)는 16일 “트럼프 대통령이 국가비상사태 발표 몇 시간 전 몇몇 보수 언론인과 통화했다. 이들이 대통령의 결정에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을 것”이라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정 언론’이 아닌 ‘특정 언론인’을 선호한다. 보수 성향 폭스뉴스라 해도 폭스 소속 모든 앵커와 기자를 좋아하지 않고 칼슨, 잉그러햄, 해니티가 진행하는 프로그램만 선호하고 단독 인터뷰에 응하는 방식이다.

‘보수 5인방’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은 선동적이란 평을 듣는다. 백인우월주의, 이민자 혐오 등 극렬 보수층의 아이디어를 종종 토론한다. 즉, 보수 5인방의 역할은 과격한 보수 아이디어가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적정 수준으로 희석해 전파하는 데 있다.

5명은 탁월한 언변을 지녔고, 개인 스캔들로 한동안 시련을 겪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해니티는 트럼프 대통령의 러시아 스캔들 개인 변호사인 마이클 코언을 역시 변호사로 고용했었단 사실을 밝히지 않아 투명성 훼손 비판을 받았다. 칼슨도 폭행 시비에 휘말렸다.

이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이 원하는 만큼의 강경 노선을 보이지 않으면 매섭게 비판도 한다. 콜터는 대통령이 지난달 25일 연방정부 일시 업무정지(셧다운) 종료 법안에 서명하자 ‘트럼프는 겁쟁이’란 로고송을 만들었다. 해니티도 11일 “여야가 합의한 국경장벽 예산안은 ‘쓰레기’”라고 비판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국가비상사태 선포를 통해 앞서 통과된 의회 예산안에서 배정된 13억7500만 달러(약 1조5500억 원)를 포함해 총 80억 달러(약 9조 원)의 예산을 쓰기로 했다. 1976년 만들어진 국가비상사태법(National Emergencies Act)은 대통령이 의회 승인 없이 광범위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트럼프#국가비상사태#보수 라디오 5인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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