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년간 함께한 조지 부시 부부…“대통령보다 남편 되는 게 더 멋진 일”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2월 1일 15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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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생전의 조지 부시 전 대통령과 바버라 여사의 모습.
2015년 생전의 조지 부시 전 대통령과 바버라 여사의 모습.

“나는 아마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을 올랐지만, 그것 역시 바버라의 남편이 되는 것보다는 못한 일이었다”

조지 H.W.부시(아버지 부시) 41대 미국 대통령이 94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4월 17일 부인 바버라 부시가 사망한 지 7개월 여 만이다. 그는 미국 대통령 역사상 결혼생활을 가장 오래 한 인물이었다. 바버라 피어슨과 1945년 결혼해 그녀가 사망하기까지 73년 동안 함께 살았다.

이 기록은 바버라 부시의 숨이 멎은 날 함께 멈췄다. 1999년 출간한 서적에 부시 전 대통령은 미국 대통령이 되는 것보다도 바버라의 남편이 되는 게 더 멋진 일이었다고 썼다.

두 사람은 1943년 미국의 한 동화책 출판 기념회에서 처음 만났다. 17세 조지의 눈에 초록색과 빨간색으로 장식된 드레스를 입은 한 여성이 들어왔다. 평소엔 누가 무슨 옷을 입었는지 금세 잊어버리곤 했던 그였다. 이상하게도 그 홀리데이 드레스가 눈에 아른거렸다. 친구에게 그 여성을 소개시켜달라고 부탁했다. 흘러나오던 곡은 글랜 밀러의 곡. 왈츠를 추지 못해 다행이었다. 춤을 추는 대신 대화를 나누며 서로를 알아가기 시작했다. 바버라 피어슨과의 긴 여정이 시작된 순간이었다.

3년 뒤 두 사람의 삶은 하나로 포개졌다. 그렇게 73년을 살았다. 결혼 초반엔 어린 딸이 백혈병에 걸려 숨졌지만 함께 이겨냈다. 이 일로 우울증까지 겪었던 바버라의 눈물을 조지는 매일 밤 닦아줬다. 2012년에는 대통령 재직 시절 경호원의 아들이 백혈병에 걸리자 조지가 함께 삭발해 어린 소년을 위로했다. 인상적인 사진도 많이 남겼다. 2015년 휴스턴 아스트로와 시애틀 마리너이 야구 게임에서 바버라가 부시 전 대통령의 코에 자외선 차단제를 발라주는 사진이 대표적이다. 2010년에는 야구 경기 중간의 키스타임에 서로 입을 맞추는 장면이 포착됐다. 바버라는 1994년 자신의 자서전에 자신들을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두 사람”이라고 썼다.

올해 3월의 조지 부시
올해 3월의 조지 부시
부시 전 대통령은 미 역사상 가장 장수한 대통령이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25일 이후 제럴드 포드 전 대통령의 나이 만 93세 165일을 앞지르면서였다. 2009년엔 자신의 85번째 생일을 기념해 스카이다이빙을 했다. 지상에 발을 딛자마자 내뱉었던 “90살 생일에 또 하겠다”라는 말을 2014년에 지켰다. 당시 바버라는 85세 조지에게 “우리 부시, 언제 철드나”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2013년 바버라는 미국의 한 케이블 채널에서 자신과 조지의 악화된 건강에 대해 “난 위대한 신이 있다고 믿기 때문에 아무것도 걱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조지는 지금쯤 어딘가에서 ‘바비’(바버라의 애칭)를 만나지 않았을까. 1일부터 하늘에서는 멈췄던 부시 부부의 결혼 시계가 다시 흘러가고 있을 것이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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