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호주머니 터는 유류세 인상 반대”… 佛 거리 뒤덮은 ‘노란 조끼’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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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오염 디젤차 겨냥 세금인상에 SNS 통해 전국서 자발적 시위
국민 70% 지지… 86만명 반대 청원
안전 위해 차량에 구비한 조끼 착용… 운전자들의 분노와 저항 강조

도로 막은 ‘노란 조끼’ 17일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서 노란 조끼를 입은 시민들이 정부의 유류세
 인상안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프랑스 정부가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디젤차를 지목해 관련 세금을 인상하겠다고 발표하자 
시위대는 모든 차량에 의무적으로 비치해야 하는 노란색 형광 조끼를 대정부 항의의 뜻으로 착용했다. 파리=AP 뉴시스
도로 막은 ‘노란 조끼’ 17일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서 노란 조끼를 입은 시민들이 정부의 유류세 인상안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프랑스 정부가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디젤차를 지목해 관련 세금을 인상하겠다고 발표하자 시위대는 모든 차량에 의무적으로 비치해야 하는 노란색 형광 조끼를 대정부 항의의 뜻으로 착용했다. 파리=AP 뉴시스
17일 프랑스 전역의 도로가 차 대신 형광색 노란 조끼로 뒤덮였다.

이날 하루에만 전국 2034곳에서 정부의 유류세 인상에 반대하는 시민 28만2300명(내무부 추산)이 노란 조끼를 입고 거리로 나와 도로를 점거하고 차량 통행을 막았다.

2013년 당시 프랑수아 올랑드 정부가 트럭에 환경세를 부과하려 할 때 프랑스 북부 브르타뉴 지방을 중심으로 ‘빨간색 보닛 시위’가 열린 바 있다. 이들은 저항의 의미로 17세기 당시 루이 14세의 세금 인상에 반대하며 시위대들이 썼던 빨간색 보닛 모자를 썼다.

이번에는 운전자들의 안전을 위해 모든 차량에 노란색 형광 조끼를 구비하고 다니도록 법으로 의무화하고 있는 것에 착안해 운전자들의 분노를 강조하기 위해 ‘노란 조끼’를 입고 거리로 나섰다.

이번 시위의 가장 큰 특징은 일반적인 대규모 거리 시위의 공식인 노조나 야권 정치인들 주도가 아니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자발적으로 모인 일반 시민들이 주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유류세 인상을 반대하는 온라인 청원에는 시민 86만 명이 서명했다.

지난해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취임 이후 공무원 개혁, 노동 개혁 드라이브에 강성 노조가 시위를 주도했을 때는 국민 지지도가 40%대에 그치며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그러나 내년 1월 예정된 정부의 유류세 인상 방침에 반대하는 시민들은 스스로 길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내 호주머니를 터는 세금 인상의 파괴력을 보여준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크리스토프 카스타네르 내무부 장관은 “집회의 자유가 이동의 권리를 막아서는 안 된다”고 외쳤지만 각종 여론조사에서 국민 70% 이상이 이번 시위에 찬성하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디젤차를 지목하고 지난해 디젤차량의 ‘탄화수소세’를 L당 7.6센트(약 97원) 올렸고 내년 1월 6.5센트(약 83원) 더 올릴 예정이다. “재생 에너지에 더 많이 투자하려면 화석 연료에 더 많은 세금이 필요하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그러나 최근 급격한 유가 상승과 맞물리면서 시민들의 분노는 폭발했다. 프랑스 차 중 60% 이상이 디젤차이다. 디젤 평균가는 최근 1년 사이 1.24유로(약 1587원)에서 1.50유로(약 1920원)로 올랐다.

특히 농기계를 사용하는 지방 소도시의 농부, 택시기사, 건설업자 등의 반발이 거세다. 푸아투 지방에서 작은 건설업을 운영하는 가엘 베르 씨는 “내가 1년에 기름값만 보통 8000유로(약 1024만 원)를 쓰는데, 유가와 세금 상승으로 내년부터 2000유로(약 256만 원)를 더 내게 됐다”며 “그렇다고 전기차를 탈 수는 없지 않나. 결국 우리 보고 죽으라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그동안 좌고우면하지 않고 개혁을 밀어붙여 온 마크롱 정부도 이번엔 주춤하는 분위기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달 14일 언론 인터뷰에서 “내가 국민을 하나로 묶는 데 실패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잘 듣고 있다”고 몸을 낮췄다. 에두아르 필리프 총리는 저소득층 자가용 차량 운전자에게 5억 유로(약 6400억 원) 규모의 세제 혜택을 제공하고 디젤차량을 교체하는 소비자에게 지원금을 늘리는 등의 당근책을 제시했다.

17일 프랑스 남동부 지역에서는 63세 여성 운전자가 자신의 차량이 50여 명의 시위대에 둘러싸이자 놀라서 차를 인도로 모는 바람에 50대 여성 보행자를 치어 숨지게 하는 사고까지 발생했다. 이 운전자는 딸을 병원으로 데려가는 길이었다.

이날 시위 과정에서 중상 7명을 포함해 227명이 다쳤으며 113명이 체포됐다. 프랑스 파리에서는 마크롱 대통령 퇴진을 외치며 엘리제궁으로 향하려는 시위대에게 경찰이 최루탄을 쏘기도 했다.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유류세 인상 반대#노란 조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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