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대법원 ‘균형추’도 퇴임… 보수색 더 짙어진다

  • 동아일보

중도성향 케네디 대법관 7월 은퇴… 후임에 보수적 인물 임명 확실시
80대진보 2명까지 조만간 퇴진땐 보수, 향후 수십년 대법원 장악

중도 보수 성향으로 미국 연방대법원에서 보수와 진보를 넘나드는 판결을 내리며 핵심적인 ‘캐스팅보트’ 역할을 수행해 온 앤서니 케네디 대법관(82)이 은퇴를 선언했다. 케네디 대법관은 27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면담한 뒤 은퇴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혔다. 트럼프 행정부가 케네디 대법관의 후임으로 그보다 보수 성향이 더 강한 젊은 대법관을 임명할 것이 확실시되면서 미국 역사상 가장 보수적인 대법원의 탄생이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케네디 대법관은 27일 오후 백악관을 방문해 트럼프 대통령과 약 30분간 면담하고 은퇴 의사를 담은 편지를 대통령에게 건넸다. 그는 이 편지에서 “법조계에 종사하면서 대법관으로 활동한 것은 최고의 영예였다”며 “올해 7월 31일을 끝으로 대법관으로서의 활동을 마치겠다”고 밝혔다. 대법원 측이 별도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그는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기 위해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면담 후 기자들과 만나 “케네디 대법관을 오랫동안 존경해 왔다. 그는 굉장한 안목을 지닌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케네디 대법관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1987년 임명한 보수 성향의 대법관이지만 지난 30년간 진보 진영에도 심심찮게 ‘선물’을 건네며 대법원의 이념적 균형을 유지해 왔다. 2015년 동성결혼을 합법화하는 판결에 찬성표를 던져 진보 우위의 ‘5 대 4’ 판결을 이끈 것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무제한적인 정치자금 사용을 합법화하는 데 찬성표를 던지고 26일엔 트럼프 대통령의 ‘반(反)이민 행정명령’의 효력을 인정하는 판결에 동참하는 등 보수적인 판단도 많았다.

그의 은퇴 소식에 공화당을 비롯한 보수 진영 전반은 흥분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 중 보수 성향의 젊은 대법관을 다수 임명해 길게는 향후 수십 년간 보수 진영의 사회적 영향력을 유지하겠다는 계획이 맞아떨어져가는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유력한 후임으로 꼽히는 토머스 하디먼 펜실베이니아주 연방항소법원 판사(53)와 브렛 카바노 워싱턴 연방항소법원 판사(53) 등이 모두 50대 초중반이다.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27일 “(중간선거 전) 가을에 후임자 인준을 마치겠다”고 밝혔다.

이에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선거가 있는 해에 대법관 인준을 고려해서는 안 된다. 그보다 더 심한 위선은 없을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2016년 매코널이 이끄는 공화당이 ‘대선 전엔 대법관 인준이 불가하다’며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의 진보 성향 대법관 임명을 막았던 전력을 지적한 것이다. 하지만 진보 측 입장에선 ‘산 넘어 산’이다. 진보 성향 대법관 4명 중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85)와 스티븐 브레이어(80)가 고령이어서 트럼프 대통령 임기 중 은퇴 소식이 이어질 경우 대법원은 보수로 더 기울 것으로 전망된다.

한기재 기자 record@donga.com
#미국 대법원#보수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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