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펠라레 대표 “아이들 꿈 지키려 전쟁의 땅에 한국 경험 전수”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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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펠라레 유니세프 중동지역 대표
“어린이 3000만명 전쟁 시달려… 예멘에선 10분에 1명꼴 사망”

“제가 만났던 시리아, 예멘, 팔레스타인 등 전쟁을 겪고 있는 나라의 아이들은 자신이 겪은 고통보다도 꿈과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더 좋아했어요.”

‘전쟁에 시달리는 아이들도 미래를 꿈꿀 수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힐트 카펠라레 유니세프 중동·북아프리카 지역 대표(57)는 이렇게 대답했다. 비참한 상황에 놓인 아이들은 꿈도 희망도 없을 것이란 기자의 섣부른 예단이 깨져 나갔다.

유니세프에 공적개발원조(ODA) 자금을 지원하고 있는 한국 정부와 국민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려고 23~25일 방한한 카펠라레 대표는 24일 서울 강남구 한국고등교육재단 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나 “그곳의 아이들도 한국의 아이들만큼이나 밝다”고 덧붙였다. 이어 “다만 전쟁이 아이들을 아이답게 살지 못하게 만들고 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얼마 전 시리아 알레포에서 만난 소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몸의 일부가 마비된 소녀였어요. ‘네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말을 걸자 소녀는 ‘물리치료사가 되고 싶다’고 대답했어요. 그 소녀는 유니세프 덕분에 2주에 1번씩 물리치료사로부터 도움을 받고 있었어요. 어느 순간부터 소녀에게도 물리치료사가 돼 어려운 아이들을 도와주고 싶다는 꿈이 생겼던 거죠. 아이들은 어떤 상황에 놓이던 간에 주변으로부터 매일 무언가를 배워요. 아이들은 고통 속에 살아가면서도 자신에게 도움을 주는 전문가들을 보며 꿈을 키워가는 셈이죠.”

중동·북아프리카에 사는 1억6000만 명의 아이 중 전쟁의 직접 영향권에 드는 아이는 약 3000만 명. 시리아 예멘 리비아 팔레스타인 남수단에서 내전이 진행되고 있으며 레바논 요르단 수단 알제리 등 주변국은 수많은 난민을 받아들이고 있다.

그는 “예멘에선 10분에 1명꼴로 아이들이 죽어간다. 팔이나 다리를 잃고 평생 장애를 갖고 살아가야 하는 아이도 많다”며 “아이들이 겪고 있는 극심한 고통을 설명할 만한 적절한 단어가 없다. ‘잔혹하다(brutal)’란 표현도 적절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빈곤층이 늘어나면서 부양할 가족을 줄이기 위한 조혼(早婚)이 횡행하고, 아이들을 노동으로 내모는 경우도 많다.

그는 “유니세프가 전쟁을 멈추게 할 순 없다. 하지만 고통 받는 아이들을 도울 수는 있다”며 “유니세프의 역할은 아이들이 계속 꿈꿀 수 있도록 아이들이 있는 현장에 함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50년 전만 해도 유니세프의 도움을 받던 한국이 이제는 도움을 주는 나라로 성장한 것은 ‘혁명’”이라며 “한국의 경험을 배워 중동·북아프리카 국가들에도 적용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1962년 우리나라 아동 지원 사업을 위해 한국에 사무소를 개설했던 유니세프는 1993년 지원사업 종료를 선언하고 철수했다. 이제는 공여국 위치로 올라선 한국과의 협력을 증진하기 위해 지난해 다시 서울사무소를 개소했다.

“고통을 겪고 있는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는 한국 정부와 한국인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아이들을 위해 함께 해주세요.”

위은지 기자 wizi@donga.com
#힐트 카펠라레#유니세프#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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