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축구영웅’ 살라, 실의 빠진 국민 희망으로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1일 03시 00분


코멘트

월드컵 최종예선 5차전 결승골… 28년만에 월드컵 본선행 이끌어
자선단체 만들어 기부도 활발
대선 무효표 상당수에 ‘살라’ 이름
군부 억압-경제 침체에 신음 국민… “현실 잊게해주는 자랑이자 행복”

3월 말 치러진 이집트 대통령 선거에서 압둘팟타흐 시시 대통령이 97%의 득표율(약 2186만 표)을 기록하며 재선에 성공했다. 그런데 무효표가 대량으로 발생했다. 흥미로운 점은 무효로 처리된 176만 표의 상당수에 이집트의 축구영웅 무함마드 살라(26)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는 것이다.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EPL)의 명문 구단 리버풀에서 뛰고 있는 살라는 이집트에서는 ‘파라오’(고대 이집트의 왕)와 같이 거의 신적인 존재다. 이집트를 28년 만에 월드컵 본선 무대에 올려놓은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해 10월 콩고와 맞붙은 2018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 5차전에서 1-1로 맞선 후반 추가시간에 극적인 페널티킥 골을 성공시키면서 이집트를 열광의 도가니로 만들었다.

살라는 자괴감에 빠진 이집트 국민에게 희망을 안겼다. 이집트에선 2011년 2월 시민혁명이 실패로 끝난 뒤 다시 집권한 군부가 민주주의를 억압하고 있다. 경제도 수렁에 빠졌다. 2016년 11월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은 뒤로 극심한 물가 상승 때문에 국민들이 시름에 잠겨 있다. 이집트 축구팬 아흐메드 함디는 “살라는 어려운 현실을 잊게 해주는 우리의 행복이자 자랑”이라고 말했다.

살라는 이집트 나일 델타지역의 가르비아주 나그리그 마을에서 태어났다. 14세 때 카이로의 아랍 콘트랙터스SC에 입단한 그는 성인이 될 때까지 일주일에 5일씩, 버스로 왕복 9시간이나 걸리는 거리를 오가며 축구를 배웠다. 살라는 “그때는 정말 힘든 시기였다. 축구장에 가기 위해 버스를 서너 번, 때로는 다섯 번이나 갈아타야 했다”고 회상했다.

살라는 18세에 이집트 프로축구에 데뷔했지만 2년 만에 위기를 맞았다. 2012년 2월 라이벌 구단인 알마스리와 알아흘리의 경기에서 팬들이 충돌해 74명이 죽고 500여 명이 다친 대참사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 사고 여파로 2011∼2012시즌 잔여 경기가 모두 취소됐고, 이집트 프로축구는 올해 2월까지 6년간 관중 없는 경기를 치러야 했다.

그러나 살라는 한 달 뒤 찾아온 운명 같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2012년 3월 이집트 올림픽 대표팀 소속으로 참가한 스위스 명문 클럽 FC바젤과의 친선경기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기면서 같은 해 6월 바젤로 이적했다. 살라는 바젤에서 한 시즌 반 동안 20골을 넣으며 프로축구 세계 최고의 무대라는 EPL에 진출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살라는 활발한 자선활동으로 이집트 국민과 무슬림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그는 최근 고향 마을의 하수처리장 건설을 위해 45만 달러(약 4억8000만 원)를 기부했다. 그는 자선단체를 설립하고 의료장비와 구급차 구입, 학교 개보수 등을 위해 매달 한국 돈으로 300만 원가량을 기부하고 있다. 살라는 경기장에서 머리를 땅에 대고 메카를 향해 기도하는 골 세리머니를 펼치고, 딸의 이름 마카(Makka)도 이슬람의 성지 메카(Mecca)에서 따왔을 만큼 독실한 무슬림이다.

카이로=박민우 특파원 minwoo@donga.com
#이집트#살라#축구영웅#대선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