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푸틴 ‘뜨거운 브로맨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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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빛만 봐도 통해”

19일 4선에 도전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당선이 확정되자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었다. 전날 축전도 보냈던 시 주석은 주요 정상 중 가장 빨리 축하 전화를 했다. 두 사람은 서로를 축하하며 입이라도 맞춘 듯 똑같이 이야기했다. “중-러 관계는 역사상 가장 좋은 시기입니다.”

앞서 17일 시 주석이 국가주석 3연임 제한 규정을 없애는 개헌안을 통과시키며 장기 집권의 문을 열었을 땐 푸틴 대통령이 곧바로 축전을 보내 “당신의 숭고한 위엄과 명망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며 축하했다. 시 주석이 2013년 주석 자리에 처음 올랐을 때 외국 정상 중 가장 먼저 전화를 걸어온 이도 푸틴 대통령이었다.

이틀 간격으로 장기 집권에 성공하며 힘이 더 강해져 돌아온 시진핑과 푸틴의 브로맨스(남자들 간 친밀한 관계)가 주목받고 있다. 두 사람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사회주의를 함께 발전시킨 마오쩌둥(毛澤東)과 이오시프 스탈린 이후 최고의 중-러 정상 궁합을 자랑하고 있다.

시 주석과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에만 5번을 만났고 지금까지 만난 횟수가 20번을 넘는다. 올해도 6월 푸틴 대통령의 방중이 예고돼 있다. 시 주석이 집권 후 처음 해외를 방문한 곳도, 지금까지 가장 많이 간 곳도 러시아다.

한 살 차이(푸틴 대통령이 한 살 위)인 두 사람은 개인적으로도 서로 호감을 갖고 있다. 2013년 푸틴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내 생각에 나와 당신은 성격이 닮았다”고 말했던 시 주석은 그해 열린 푸틴 개인 생일 파티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두 사람은 보드카를 마시며 아버지 이야기를 나눴다. 푸틴 대통령은 아버지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군에 맞섰던 이야기를 들려줬고, 시 주석은 아버지가 항일 투쟁을 했다고 자랑스럽게 밝혔다. 2015년 두 사람은 서로의 전승절 열병식에 참석하며 우애를 다졌다.

카리스마가 강한 ‘스트롱맨 리더십’의 대명사인 두 사람은 2인자를 키우지 않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냉혹한 권력자의 상징인 동시에 부정부패 척결로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전략도 비슷하다.

‘중국몽(中國夢)’을 내세운 시 주석과 ‘강력한 러시아 재건’을 내세우는 푸틴 대통령을 관통하는 정치 철학은 국가주의다. 시 주석은 20일 베이징(北京)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대·한국의 국회 격) 폐막 연설에서 “어떠한 국가 분열 행위나 꼼수도 실패할 것이고 역사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며 대만과 홍콩의 분리 세력에 경고했다. 푸틴 대통령도 체첸 독립을 용납하지 않고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침공해 강제 병합하는 등 국가주의 행보로 지지 기반을 다졌다.

두 사람 집권 이후 정치, 경제적 협력은 급속도로 커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재집권에 성공한 푸틴 대통령과 시 주석에게 축전을 보내지 않았다. 미국을 대표하는 서방에 대항해 중-러가 연대하는 신냉전 구도가 굳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러를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전략적 경쟁자”로 규정했다.

역설적으로 서방의 대러 경제 제재가 시-푸 연대를 강화시켰다. 2014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강제 병합 이후 서방의 제재로 러시아의 대중 무역의존도가 급속도로 높아졌다. 양국의 무역 규모는 지난해 840억 달러로 전년 대비 20.8%나 올랐다. 2018년까지 800억 달러로 늘리겠다는 목표를 훌쩍 넘은 실적이다.

시 주석은 집권 첫해인 2013년 모스크바 방문 때 “중국의 꿈과 러시아의 꿈은 같다”고 외쳤다. 그러나 지금 시대는 중-러 두 나라의 연대만으로 살아갈 수 없다는 게 시-푸 연대의 최대 걸림돌이다. 1949년 마오쩌둥은 “중국은 냉전 시대에 소비에트연방 편에 설 것”이라고 공식 발표했지만 지금은 불가능하다.

중국과 러시아는 경제 분야에 있어 글로벌 자유주의를 표방하며 서방 국가와의 교역을 늘려 가고 있다. 선거 기간 내내 서방 세계와 대립을 유발했던 푸틴 대통령이 선거가 끝나자마자 “나는 무기 경쟁을 원하지 않으며 국제사회와 차이점을 해결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톤을 낮춘 것이나, 시 주석이 20일 “중국은 영원히 패권국가를 도모하지 않겠다”고 유화 메시지를 던진 것은 같은 맥락이다.

게다가 중앙아시아와 극동 지방 개발을 둘러싸고 두 나라 간 경쟁이 불가피하다. 푸틴 대통령은 중앙아시아로의 영향력 확대를 내심 꿈꾸지만, 이미 중앙아시아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국가는 중국이다. 시 주석은 중국과 중앙아시아를 거쳐 유럽까지 이어지는 일대일로(一帶一路·21세기 육상과 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 구상을 꿈꾸고 있다.

파리=동정민 ditto@donga.com / 베이징=윤완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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