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만장자인 ‘칠레의 트럼프’ 피녜라, 경제회복 공약으로 4년만에 재집권
결선투표서 좌파여당연합 후보 눌러… 외신 “경기침체가 피녜라 승리 불러”
온두라스도 에르난데스 대통령 재선… 내년 브라질 멕시코등 대선 영향 전망
기업인 출신 억만장자로 ‘칠레의 도널드 트럼프’로도 불려온 세바스티안 피녜라 전 칠레 대통령(68)이 4년 만에 재집권에 성공했다. 중남미에서 가장 안정적인 경제·사회 구조를 지닌 나라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칠레에서 우파가 대선에 승리한 것이다. 같은 날 온두라스에서도 기업인 출신으로 우파 성향인 후안 올란도 에르난데스(49) 현 대통령이 당선돼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페루 등에서 시작된 ‘우파 바람’이 거세지고 있다.
20여 년간 중남미에서 힘을 떨쳤던 ‘핑크 타이드’(온건 사회주의 성향의 좌파 정치 물결)가 약해지면서 내년에 대선을 치르는 멕시코, 브라질, 콜롬비아, 파라과이 등에도 우파 바람이 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17일 뉴욕타임스(NYT)와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피녜라는 이날 결선 투표에서 54.8%를 득표해 중도좌파 여당 연합 측 후보인 알레한드로 기예르 상원의원을 꺾고 당선을 확정지었다.
피녜라는 대선 기간 내내 ‘경제와 기업 살리기’를 강조했다. 중도좌파 성향의 미첼 바첼레트 현 대통령이 각종 사회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투자자들을 위협하고, 공공부문의 빚을 늘리고 있다고 비판해 왔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정부의 관료주의를 없애고, 법인세 축소와 투자자에 대한 인센티브제 등을 도입하겠다고 강조했다.
NYT와 FT 등 외신들도 침체된 칠레 경제가 피녜라의 승리를 불러온 결정적인 이유라고 꼽았다. 세계 최대 구리 생산국인 칠레는 최근 구리 가격이 떨어지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바첼레트 재임 중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2%대에 그쳐, 피녜라 집권 시기의 절반 수준에 머물렀다. 바첼레트는 아우구스토 피노체트(1974∼90년 집권) 독재 정권 시대에 마련된 헌법을 개혁하려다 사회적 논란을 불렀고 가족 연루 부패 스캔들에도 휘말렸다.
하지만 칠레 국민들의 피녜라에 대한 기대치도 높은 편은 아니다. NYT는 대선 기간 내내 칠레 국민들은 이번 대선을 ‘둘 중 덜 나쁜 사람을 뽑는 선거’로 인식했다고 전했다. 언론인 출신으로 대학교수인 훌리오 세르비아트 씨는 “(이번 대선에서) 국민들이 열광하는 대상은 없었다”며 “최고가 아닌 덜 나쁜 사람에게 투표하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칠레의 도널드 트럼프’란 별명답게 벌써부터 피녜라가 부유층과 기업만을 위한 정책을 추진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동성결혼같이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서도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혀왔기 때문에 향후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높다. 칠레와 온두라스에서의 우파 집권이 중남미 나라에 미치는 파장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볼리비아와 베네수엘라, 니카라과, 에콰도르 등에서 좌파가 여전히 건재하다. 현재 브라질과 멕시코 대선 후보 중 가장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는 정치인은 각각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대통령과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전 멕시코시티 시장 등으로 모두 좌파 성향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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