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검찰 “카탈루냐 수반-각료들 반역혐의로 기소”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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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탈루냐 현지 르포]


박민우 특파원
박민우 특파원
카탈루냐는 독립을 선포했지만 자치정부는 홀로 서지 못했다.

자치정부가 독립을 선언(27일)하고 맞은 첫 평일인 29일 카를레스 푸지데몬 자치정부 수반은 청사에 나타나지 않았다. 독립 움직임이 사실상 힘을 잃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카탈루냐의 홀로서기를 지지하는 여론도 점차 약해지고 있다.

이날 오전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자치정부 청사 정문 앞에는 출입을 통제하는 철제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려면 바리케이드 양쪽 끝 입구를 막고 선 카탈루냐 자치경찰 ‘모소스 데에스쿠아드라’를 통과해야 했다. 어깨에 총을 멘 경찰이 굳은 표정으로 “오늘 푸지데몬 수반이 출근할지는 알 수 없지만 오더라도 결코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바르셀로나 시청과 카탈루냐 자치정부 청사가 마주보는 산 하이메(자우메) 광장엔 이른 아침부터 카메라 수십 대가 늘어섰다. 취재진의 공통된 관심사는 푸지데몬 자치정부 수반의 출근 여부였다. 혹시나 푸지데몬 수반의 출근 장면을 놓칠까 뒷문에서도 기자들이 소위 ‘뻗치기’(현장 지키기)를 하고 있었다.

푸지데몬 수반은 스페인 중앙정부에 의해 해임됐지만 연설을 통해 민주적으로 저항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또한 그의 측근은 “자치정부 요인들이 월요일에 평소처럼 출근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푸지데몬 수반은 결국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분리·독립 주민투표 전에는 장밋빛 청사진을 내놓으며 독립을 선포하는 즉시 국경 통제에 들어가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밝혔지만 정작 자신의 집무실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푸지데몬 수반은 전날 스페인 프로축구 프리메라리가에서 헤로나가 레알 마드리드를 안방에서 꺾자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헤로나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팀 중 하나를 상대로 승리한 것은 다양한 상황에 대한 예와 참조가 될 것”이라는 글을 남겼을 뿐 주말 내내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스페인 검찰은 이날 푸지데몬 수반과 자치정부 각료들을 반역 및 내란선동 혐의로 기소할 방침을 밝혔다. 반역죄는 최고 징역 30년형을 선고할 수 있다. 검찰은 이들의 체포 계획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카탈루냐 깃발을 두르고 산 자우메 광장에서 독립을 외치던 존 코레아 씨는 “나는 카탈루냐 사람이지 한 번도 스페인 사람이라고 느낀 적이 없다. 오늘 푸지데몬의 출근 여부와 상관없이 그를 지지한다는 걸 알리고 싶어 이곳에 왔다”고 말했다. 일부 지지자는 광장 한편에서 푸지데몬 수반을 기다리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독립을 주도했던 카탈루냐 수뇌부가 힘없이 붕괴되면서 지지 세력의 독립 의지도 눈에 띄게 줄어든 모습이다. 그동안 독립파에 묻혀 침묵하던 다수는 반대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전날 카탈루냐 광장 인근에서 열린 반독립 집회엔 주최 측 추산 130만 명이 모였다.

집회에 참가한 아나 로드리게스 씨는 “오늘날 모든 나라가 장벽을 허물고 통합으로 나아가고 있다. 카탈루냐의 독립은 세계로부터 고립되는 것이며 역사에서 뒷걸음치는 행위”라며 “또한 유럽연합(EU)에 반하는 것이고, EU는 당연히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참가자인 콘치 가르세아 벨라세라나 씨는 “우리가 EU를 떠나면 수많은 기업을 잃게 될 것이다. 독립 투표 이후 1200개가 넘는 회사가 카탈루냐를 떠났다”고 말했다.

카탈루냐의 독립파 정당들의 입지도 줄어들고 있다. 카탈루냐 자치의회는 해산되기 전 푸지데몬 수반의 소속당인 카탈루냐유럽민주당(PDeCAT)과 공화좌파당(ERC), 민중연합후보당(CUP) 등 독립파 정당이 전체 135개 의석 가운데 과반인 72석을 점하고 있었다. 하지만 카탈루냐 정치권이 스페인 중앙정부의 직접 통치를 받아들이고 12월 21일 조기 선거를 치를 경우 실각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카탈루냐 정치권은 아직 조기 선거에 대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중도 우파 PDeCAT와 중도 좌파 ERC는 이날 선거에 대한 입장을 논의할 예정이지만 극좌 성향의 CUP가 자신들의 자치권을 몰수한 중앙정부와 타협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바르셀로나=박민우 특파원 minwoo@donga.com
#카탈루냐#스페인#독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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