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언론 검열제도는 괜한 의심을 하고 생트집을 잡는 지경에 이르렀다. 검열이 중국 사회의 건강한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중국의 저명한 사회학자인 리인허(李銀河) 중국사회과학원 교수(65)가 9일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에 “모든 국민이 떨쳐 일어나 저항해 헌법에 위배되는 언론 검열을 없애야 한다. 언론 자유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어 “그들(당국)은 도대체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그들이 지키는 것이 어떤(누구의) 영토인가”라고 검열 당국을 비판했다. 사회과학원은 국무원(한국의 총리실) 직속 싱크탱크이자 중국 최대의 연구기관이다. 이 기관에 소속된 유명 학자가 검열 철폐를 주장하는 장문의 글을 올리자 발칵 뒤집혔다.
미국의 소리(VOA) 중문판의 대담 프로그램 ‘스스다자탄(時事大家談)’ 사회자는 12일 “리 교수의 글은 순식간에 수만 회 공유됐고 수만 명이 ‘좋아요’를 눌렀다”고 전했다. 리 교수의 웨이보 글은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에 의해 삭제됐다.
갑자기 불거진 검열 철폐 논란은 간암 말기로 생명이 위독한 중국의 대표적 민주화 운동가 류샤오보(劉曉波·62)가 해외 치료를 간절히 원하고 있음에도 중국 당국이 허용하지 않는 사건과 맞물리면서 주목받고 있다. 주요 2개국(G2)으로 부상한 중국의 국력에 걸맞지 않은 인권과 사회 통제 문제가 국제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 시진핑의 중국, 전국에서 통제 강화
두 사건은 2012년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집권 이후 중국 전역을 휩쓸고 있는 사회 통제 강화에 대한 반작용을 대표한다. 영국 BBC방송 중문판은 “시진핑 정부가 사회 안정과 국가 안보, 범죄 소탕을 내세워 민주화 운동가들에 대해 대대적인 탄압을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시 주석이 올해 10월 제19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전당대회)에서 장기 집권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체제 위협 요소의 확산을 강하게 통제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식인들의 우려는 커지고 있다. 중국의 한 학자는 최근 주변에 “(문화대혁명을 했던) 마오쩌둥(毛澤東) 시대로 돌아가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익명을 요구한 중국 인사는 “중국은 세계화의 가장 큰 수혜자이지만 경제 세계화는 받아들여도 정치사상의 세계화는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BBC도 홍콩 인권운동가를 인용해 “중국 당국은 세계의 보편적 가치관이 국민에게 미칠 영향을 두려워한다”고 보도했다.
○ “체제에 성난 영혼은 안 돼”
한때 반체제 인사들의 출국을 허용했던 중국이 류샤오보의 출국을 막고 있는 것도 사회 통제 강화 움직임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뉴욕타임스(NYT)는 11일 “류샤오보가 치료를 위해 풀려나면 자유롭게 말할 수 있다. 중국 당국이 두려워하는 것”이라는 페리 링크 캘리포니아주립대 소속 중국 전공 교수의 분석을 인용했다. 류샤오보는 무덤에서 뛰쳐나와 고위 관리들의 악행을 고발하는 ‘성난 영혼들’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중국 당국은 그가 사망한 뒤 반체제 인사들에게 영감을 주는 ‘성난 영혼’이 되는 걸 우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 언론들이 류샤오보의 운명에 주목하고 있음에도 영문 매체를 제외한 중국 관영 매체에서 류샤오보 관련 기사를 찾아볼 수 없다. 12일 베이징(北京) 시내에서 만난 중국인들에게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류샤오보를 아느냐’고 물어봤지만 아는 사람이 없었다. BBC도 “서방 기자들이 류샤오보를 치료하는 선양(瀋陽)의 중국의대 제1병원에서 당직 간호사에게 류샤오보의 병실을 물었을 때 누구인지 모른다며 왜 이 사람에 대해 이렇게 많은 사람이 묻느냐고 되물었다”고 전했다.
○ 베이징대 칭화대도 정치 통제
당국의 통제는 한층 강화되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지난달 공산당 감찰기관인 중앙기율위원회는 “수개월간의 조사 결과 베이징대와 칭화대 등 중국 유수의 대학 14곳에서 정치사상 교육 취약 등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며 대학 당국을 강하게 비난했다. 교육부도 대학들에 “서방 가치관으로 가득 찬 교육자료 사용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FT는 “공산당 지도부와 대학의 이념을 일치시키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인권 운동가 체포도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올해 3월 중국 광둥(廣東)성 중급인민법원은 국가 정권 전복 선동 혐의로 기소된 인권운동가 2명에게 각각 징역 4년 6개월, 3년형을 선고했다. 이들은 2014년 홍콩을 휩쓴 민주화 시위 우산혁명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체포됐다. 이들의 변호사는 “정부 비판이 정권을 전복한다는 뜻이 아니다. 이번 판결로 언론의 자유가 더욱 제약받을 것”이라고 반발했다.
2015년 7월 9일에는 전국에서 인권 변호사와 운동가, 가족 300여 명이 체포되는 ‘709 사건’이 발생했다. 2주년을 맞아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최근 “당시 체포됐다 가석방된 인권변호사 왕위(王宇) 씨가 기억력의 심각한 약화, 주기적 공포에 시달려 정신건강의학과 진료가 필요하다고 호소했다”고 전했다.
○ 국제사회도 G2 중국에 눈치
중국은 지난해 9월 유엔 인권이사회와 협력하고 유엔 인권대표의 중국 방문을 요청하겠다는 내용의 국가인권행동계획을 발표했다. 자국 내 인권 문제에 대한 우려에 선제적 조치를 취한 것이다.
전통적으로 중국 인권을 비판해 온 미국과 유럽은 중국 인권 문제에 대한 공식적 비판을 자제하고 있다. 세계 2위로 올라선 중국 경제력을 의식해 제 목소리를 내지 않는 것이다. 실제로 중국은 2010년 류샤오보의 노벨 평화상 수상에 반발해 노벨평화상위원회가 있는 노르웨이를 상대로 연어 수입 중단이라는 경제 보복을 7년 동안 가했다. 이달 초 열린 독일 함부르크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도 류샤오보 석방 문제를 공개적으로 거론한 정상은 아무도 없었다.
지난달에는 그리스가 정치범 박해와 억류 등 중국 인권 상황을 규탄하는 유럽연합(EU) 성명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인권 규탄의 수위가 너무 세다는 이유였지만 실은 중국과의 경제관계를 고려한 그리스의 정치적 선택이었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는 “중국이 경제력을 앞세워 (중국 인권을 비판하지 못하도록) 일부 서방국가를 구슬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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