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 수 3분의1 줄이겠다” 정치개혁 칼 빼든 마크롱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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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원 합동연설서 전격발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3일(현지 시간) 파리 외곽 베르사유궁전에서 상·하원 합동 연설을 시작한 지 30분쯤 지났을 무렵, 느긋하게 연설을 듣던 의원들의 표정이 갑자기 딱딱하게 굳었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금까지 우리는 잘못된 트랙에 있었고 프랑스는 이제 전혀 새로운 길에 들어섰다”며 의원의 수를 3분의 1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의원 정원 감축은 마크롱의 대선 공약이긴 했지만 이렇게 빨리 정치개혁의 칼을 빼들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의회 정원 감축과 비례대표제 도입을 통해 국민의 눈높이에 미치지 못하는 의회 기능의 질을 끌어올리겠다는 뜻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기성 정치권의 저항을 의식한 듯 “가을까지 양원 의장은 이것을 실행하기 위한 구체적인 제안을 달라. 의회에서 투표하지 않으면 국민투표에 부치겠다”고 강수를 뒀다.

이날 연설을 놓고 ‘마크롱식 정치개혁’의 닻을 올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재 프랑스 상원은 348석, 하원은 577석으로 의원 수가 1000여 명에 육박한다. 5년 임기의 하원의원은 577개 선거구에서 직접선거로, 6년 임기의 상원의원은 선거인단에 의해 간접선거로 선출된다. 국민 눈에 이들은 별다른 일도 하지 않으면서 세비만 축내는 특권층이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따라다녔다.

마크롱의 정치개혁이 성공한다면 하원과 상원은 각각 385명과 232명으로 줄어든다. 그는 “의원 수는 적어져도 오히려 더 강력해질 것”이라며 “물 흐르듯이 효과적으로 일도 더 잘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민주주의를 강화하기 위해 비례대표 도입과 시민들의 청원권 강화도 제시했다. 그는 “의회는 모든 국민을 좀 더 정확하게 대표할 필요가 있다”며 1986년 이후 폐지됐던 비례대표 도입을 들고나왔다. 국민 70% 이상이 이에 찬성하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또 “의원을 거치지 않고 시민들이 더 쉽게 직접 청원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원한다”며 청원권 강화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어 국회의원들과 고위 공직자들의 재임 중 형사 범죄를 따로 다루는 특별법정인 공화국법정(CJR)을 없애겠다고 밝혔다. 공화국법정은 3명의 판사, 상·하원 각 6명으로 구성된 12명의 재판관이 비밀투표와 다수결로 처벌 수위를 결정해 정치인들의 ‘제 식구 감싸기’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게다가 절차도 복잡해 20년 동안 4번밖에 열리지 않았다.

그러나 마크롱식 정치개혁은 삼권분립의 한 축인 의회의 힘을 약화시켜 ‘행정 독주’를 하겠다는 의지라는 비판도 만만찮다. 마크롱 대통령은 급속한 사회변화에 맞게 의회 표결 절차를 간소화하고 의회의 전체표결로 가는 법안 비율을 줄여 상임위 의결만으로 통과되도록 하는 방안도 제안했다.

‘주피터 마크롱’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그리스로마신화에 나오는 신 ‘주피터’로 표현한 현지 일간 리베라시옹의 3일자 1면. 리베라시옹 웹사이트 캡처
‘주피터 마크롱’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그리스로마신화에 나오는 신 ‘주피터’로 표현한 현지 일간 리베라시옹의 3일자 1면. 리베라시옹 웹사이트 캡처
특히 일부 언론은 연설 장소가 베르사유궁전이었던 것을 비꼬아 마크롱 대통령이 궁전을 지었던 ‘태양왕’ 루이 14세를 꿈꾸는 것 아니냐는 비판마저 제기하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이 선거 승리 연설을 과거 궁전으로 쓰였던 루브르박물관에서 하고, 지난달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도 베르사유궁전에서 연 것 역시 제왕적 리더십을 꿈꾸는 신호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극좌 장뤼크 멜랑숑 의원은 “파라오 마크롱”이라고 비판하며 연설에 불참했고 일간 리베라시옹은 그리스로마 신을 빗대 “주피터 마크롱”이라고 비꼬기도 했다.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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