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맞은 외교… 駐터키 러시아 대사, 터키 경찰에 피살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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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테러 공포]터키주재 대사 피격 사망
“알라후 아크바르<알라는 위대하다>, 알레포를 잊지말라”
네 발 쏜뒤 쓰러진 러 대사 확인사살

 19일 오후(현지 시간) 터키 수도 앙카라의 현대미술관에서 일곱 발의 총성이 울렸다. 터키 주재 러시아대사 안드레이 카를로프(62)가 ‘터키인의 눈으로 본 러시아’라는 사진전시전 개막 축하 연설을 막 끝낸 뒤였다. 네 발은 카를로프 대사 뒤에서, 세 발은 바닥에 쓰러진 대사 위에서 발사됐다.

 검은색 정장 차림의 범인은 네 발 발사 직후 왼손 검지로 하늘을 가리키며 아랍어로 “알라후 아크바르(알라는 위대하다)”를 외쳤다. 다시 터키어로 “알레포를 잊지 마라, 시리아를 잊지 마라”고 소리쳤다.

 범인은 긴급 출동한 경찰특공대의 총을 맞고 숨졌다고 터키 내무부가 발표했다. 범인은 놀랍게도 현직 터키 경찰관인 메블뤼트 메르트 알튼타시(22)로 밝혀졌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터키 이즈미르 주 경찰학교를 졸업한 범인은 앙카라에서 시위진압 대원으로 일했다. 이날 경찰 신분증을 보여주고 총기를 휴대한 채 검색대를 통과할 수 있었다.

 숨진 카를로프 대사는 외교관 경력 40년의 정통 외교 관료로 한국과 북한에서 20여 년간 근무해 한국어에 능통한 것으로 알려졌다. 1979년부터 북한 주재 소련대사관에서 근무한 그는 소련 해체 후인 1992∼1997년에는 한국 주재 러시아대사관에서 근무했다. 2001년에는 북한 대사로 임명돼 5년 이상 근무했다. 터키 주재 대사로는 2013년 7월부터 근무했다.

 이번 사건으로 터키와 러시아의 밀월 관계에 타격을 입을 것이란 얘기가 나온다. 하지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날 터키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과 긴급 전화통화를 한 뒤 “이번 사태에 대한 유일한 대답은 테러리즘과 전투를 강화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에르도안 대통령도 “러시아와 터키는 양국 관계 정상화를 훼손하려는 이런 도발에 혹하지 않는다”며 양국 관계가 여전히 공고하다고 주장했다.

 현지 경찰은 알튼타시의 집을 급습해 증거 확보에 나섰고 가족을 상대로 범행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알튼타시가 범행 후 시리아와 알레포 사태를 언급한 만큼 최근 러시아가 지원하는 시리아 정부군이 알레포를 점령한 것에 대한 보복 차원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알튼타시가 시리아 반군과 연계된 인물이거나 추종자라는 것이다. 특히 시리아 내전에서 터키는 반군을, 러시아는 정부군을 지원해 왔는데 최근 반군 세력이 크게 약화되면서 터키의 민심은 러시아에 대한 불만으로 들끓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다.

 터키 정부 당국은 이번 사건의 배후로 에르도안 대통령의 정적인 재미 이슬람학자 펫훌라프 귈렌을 지목하고 있다. 터키 경찰은 범인과 귈렌의 연결 고리를 찾는 데 집중하고 있다. 터키 당국은 알튼타시가 7월 에르도안 대통령에 대한 군부의 쿠데타 시도 당일과 다음 날 이틀 동안 휴가를 낸 문서를 공개하며 사태의 책임을 귈렌에게 돌리고 있다.

 이번 대사 피격 사건과 관련해 배후를 자처한 이슬람 무장 세력은 나오지 않았지만 수니파 무장 세력인 이슬람국가(IS) 추종자들은 인터넷에서 일제히 환영했다. 현지 경찰은 이슬람 무장 세력의 개입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수사하고 있다.

권재현 confetti@donga.com·황인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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