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 40시간 남기고 ‘클린턴 면죄부’… ‘병주고 약 준’ FBI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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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美 대선]메일 추가수사 9일만에 무혐의 결론

 지난달 28일(현지 시간)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 개인 e메일 추가 수사 방침을 선언했던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9일 만인 6일 갑작스레 무혐의 결정을 내리면서 미국 대선이 막판에 롤러코스터 같은 반전 드라마를 연출하고 있다. 투표 시작 시간을 불과 40여 시간 앞두고 내려진 전격적인 조치에 미 대선은 다시 요동쳤다. 마치 한국 검찰이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대선 후보의 BBK 의혹에 대해 전격 수사에 착수한 뒤 대선 직전 무혐의 처분을 내린 것을 떠올리게 한다.

 제임스 코미 FBI 국장은 일요일인 6일 미 하원에 보낸 긴급 서한에서 클린턴에 대한 추가 수사 결과를 공개했다. 그는 “7월 내린 불기소권고 결정을 유지하겠다”며 클린턴에게 면죄부를 줬다. 당초 FBI는 “언제 수사가 종결될지 알 수 없다”며 대선 전 수사 결과 발표가 불가능하다고 강력히 시사했다.

 FBI가 신속한 결정을 내린 표면적인 이유는 새로 발견한 클린턴 e메일에서 기밀 유출 내용을 추가로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CNN에 따르면 FBI는 클린턴의 최측근 후마 애버딘 클린턴 캠프 부위원장의 노트북에서 65만여 개의 e메일 기록을 찾았지만 국가기밀 유출과 관련한 내용은 발견할 수 없었다. 수사 당국자는 CNN 인터뷰에서 “애버딘의 노트북이 10년도 더 된 구형이라 그 안에 엄청난 분량의 e메일이 있었지만 (클린턴 불기소라는) 우리의 판단을 바꾸어야 할 새로운 내용은 없었다”고 밝혔다. e메일 대부분은 7월 수사 결과 발표 당시 파악했던 e메일의 복사본이었다는 것이다.

 추가 수사 결정 후 코미 국장과 FBI 조직이 직면한 정치적인 부담은 이번처럼 신속한 결정을 내리게 된 외부적 배경이다. 코미 국장은 민주당을 중심으로 퇴진 압력을 받는 등 대선 개입 논란에 휩싸이자 대선 전에 문제를 정리하겠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FBI 관계자는 의회 전문 매체인 더힐과의 인터뷰에서 “코미 국장이 클린턴에게 별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 최대한 빨리 이를 공개하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대선 막판 최대 변수였던 FBI 추가 수사가 매듭지어지면서 클린턴 측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브라이언 팰런 캠프 대변인은 이날 성명에서 “우리는 FBI의 무혐의 결정이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확신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는 이날 미시간 주 유세에서 FBI 결정에 대해 “내 그럴 줄 알았다. 클린턴은 조작된 시스템의 보호를 받고 있다”며 강력 반발했다. 트럼프 측의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은 “코미 국장이 엄청난 정치적 압력을 받았을 것”이라며 정치적 의혹을 제기했다

 클린턴은 트럼프에 대한 비판을 이어갔다. 경합 주인 오하이오 주 클리블랜드에서 열린 유세에 미국프로농구(NBA)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의 흑인 스타인 르브론 제임스 등과 나서 “트럼프가 제시하는 미국은 너무도 어둡다. 모든 미국인이 대우받는 그런 미국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현지 언론들은 FBI의 전광석화(電光石火) 같은 추가 수사 발표가 클린턴에게 불리하게 돌아갔던 판세를 다시 클린턴에게 유리하게 만들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클린턴은 문제 있는 대선 후보”라는 이미지가 확산되면서 막판에 마음이 흔들렸던 지지층 상당수가 투표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FBI가 클린턴에게 불확실한 투표 환경을 말끔히 해소해줌으로써 다시 트럼프와의 격차를 벌릴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투표 때까지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은 클린턴에게 유리한 극적 효과를 반감시킬 수도 있다. CNN은 “이미 사전투표가 상당히 진행됐고 유권자들이 극명하게 양분돼 있어 이번 결정은 판세의 불확실성을 다소 줄이는 정도의 영향만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힐러리#fbi#미국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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