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의 그늘’ 벗어나려는 EU… 경제-안보 ‘원초적 충돌’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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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그마어 가브리엘 독일 부총리 겸 경제장관이 28일 공영방송 ZDF TV 인터뷰에서 “미국과의 범대서양무역투자동반자협정(TTIP)은 사실상 결렬됐다”고 선언했다. “유럽인으로서 미국이 내건 요구에 굴복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역내 8억 인구의 자유무역협정을 목표로 2013년 7월부터 14차례 협상을 벌여왔다. 하지만 좀처럼 양측의 이견이 해소되지 않고 있어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임기 내 타결은 사실상 힘들어졌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도 올 5월 “농업과 문화 분야를 개방하라는 미국의 요구를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며 사실상 반대 의사를 밝혔다. 유럽 내에서 TTIP 체결에 가장 적극적이던 미국의 최대 우방 영국마저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결정으로 EU와 멀어지면서 TTIP 추동력은 힘을 잃어가고 있다.

최근 미국-EU 관계가 심상치 않다. 경제 분야에서 마찰이 계속되고 있고 안보 분야에서도 원심력이 커지고 있다. ‘구글세’ 논란도 미국과 EU의 힘겨루기 성격이 강하다. EU는 다국적 기업이 EU 국가에서 엄청난 돈을 벌어 가면서 정당한 세금을 안 내고 있다고 벼르고 있다. 구글세는 다국적 기업이 세율이 높은 국가에서 올린 수익을 세율이 낮은 국가로 넘겨 조세를 피하는 행위를 막기 위해 부과하는 세금이다. 다음 달엔 애플에 최대 190억 달러(약 21조900억 원)의 추징금이 부과될 것으로 예상된다. EU는 사실상 미국 기업들을 겨냥해 다국적 기업이 EU 회원국에서 얻은 이익과 납부한 세금을 국가별로 공개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국방 분야에서도 EU의 독자 노선이 뚜렷해지고 있다. 26일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는 독일과의 정상회담에 앞서 “유럽 군대를 공동으로 창설하는 작업을 시작하자”고 밝혔다. 유럽 통합 군대 창설은 EU가 사실상 하나의 연방국가가 돼야 가능한 구상이지만 프랑스 이탈리아 체코까지 “위협에 맞서 유럽의 힘을 보여줘야 한다”고 맞장구를 치고 있다. 테러와 난민 문제로 EU 회의론이 커지자 오히려 EU 군대 창설 논의를 계기로 통합의 속도를 내자는 의견이 힘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는 70년 가까이 계속되어 온 미국 중심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우산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독일 프랑스 등 EU 주요 국가들은 선거를 앞두고 있어 유권자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국민 정서를 따르면 미국과의 관계는 더 멀어질 가능성이 크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독일 국민의 70%는 TTIP 체결이 독일에 손해라며 반대했다. EU 군대 창설에 대해서는 프랑스 국민의 67%(2013년 조사), 독일 국민의 49%(2015년 조사)가 찬성해 반대 비율보다 높았다. 미국도 대선을 앞두고 있어 TTIP 협상을 손해를 보면서 할 수 없는 처지다.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유럽 국가들의 NATO 분담금이 너무 적다고 보고 있다.

당분간 미국과 EU의 갈등은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제이컵 루 미 재무장관은 애플에 대한 EU의 구글세 부과 계획에 대해 “EU가 불공정하게 미국 기업만 타깃으로 하고 있다”며 “EU가 지금과 같은 길로 계속 나아간다면 가능한 대응 방안을 고려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eu#브렉시트#tt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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