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2개의 전쟁’ 치유 발걸음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23일 03시 00분


23~27일 베트남-일본 순방
베트남에 ‘무기금수 전면해제’… 미군 41년만에 재주둔 추진
히로시마선 ‘핵없는 세상’ 연설… AFP “고통스러운 과거 매듭”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베트남전과 원폭 투하라는 역사적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아시아 순방길에 나섰다. 베트남(23∼25일)에서 시작해 일본(25∼27일)으로 이어지는 이번 순방은 전쟁을 치렀던 국가들과의 과거사를 정리하고 특히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기 위한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 재균형(Asia Rebalancing) 정책’의 역사적 이벤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 방문에서 1984년부터 베트남에 적용해 온 무기 금수(禁輸) 조치를 전면 해제하고, 베트남은 이에 대한 화답으로 1975년 베트남전 종전 후 41년 만에 베트남 중남부 깜라인 만 미군의 재주둔을 허용할 것으로 보인다. AFP통신은 “20세기에 치러진 두 개의 전쟁에 따른 고통스러운 장(章)을 매듭짓는 목적이 있다”고 평가했다.

21일(현지 시간) 대통령 전용기인 에어포스원으로 미 워싱턴을 출발한 오바마 대통령은 23일 베트남 하노이에 도착해 응우옌푸쫑 서기장, 쩐다이꽝 국가주석, 응우옌쑤언푹 총리 등 지난달 선출된 베트남 새 국가 지도부 ‘빅3’를 만난다. 미국 대통령으로는 세 번째 베트남 방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베트남 정부가 원하는 사회기반시설 투자 확대는 물론이고 중국과 파라셀 제도(중국명 시사·西沙 군도, 베트남명 호앙사 군도) 등을 놓고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것을 감안해 무기 금수 조치의 전면 해제도 검토하고 있다. 미국은 1995년 수교 후 살상 능력이 없는 무기에 한해 수출 금지를 해제했다. 또 베트남전 당시 미군이 살포한 고엽제 피해자 지원책과 함께 80만 t의 불발탄 제거를 위한 협력 방안도 내놓을 계획이다.

베트남이 미군 재주둔을 허용할 방침인 깜라인 만은 파라셀 제도, 스프래틀리 제도(중국명 난사·南沙 군도, 베트남명 쯔엉사 군도) 등 중국-베트남 간 영유권 분쟁지에서 각각 550km 정도 떨어진 동남아의 군사 요충지다. 미군이 베트남전 당시 전투기와 수송기, 병력 집결지로 활용했던 깜라인 만에 다시 주둔할 경우 동남아 군사 역학 지형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이와 함께 베트남은 미군이 추진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의 조기 비준도 약속할 것으로 보인다. TPP 가입 12개국 중 한 곳인 베트남은 빠르면 7월 국회에 TPP 비준 동의안을 제출한다. 베트남은 오바마 대통령 방문에 앞서 대표적 반(反)체제 인사인 응우옌반리 신부(70)를 석방키로 결정했다. 지난해 말 양국 교역액은 450억 달러(약 53조6000억 원)로 10년 새 7배가량 늘었다. 워싱턴의 한 외교 소식통은 “미국은 베트남에 1위 수출시장이고 베트남은 미국에 동남아의 핵심 시장이자 군사적 거점인 만큼 파격적 조치가 나올 것”이라고 전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베트남 방문을 마친 뒤 26, 27일 일본 미에(三重) 현 이세시마(伊勢志摩)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거쳐 27일 오후 히로시마 평화공원을 찾아 핵 없는 세상에 대한 비전을 밝힌다. 오바마 대통령은 22일 NHK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핵무기를 둘러싼 가장 큰 과제는 북한 핵 개발 계획의 위협”이라며 “북한은 핵무기를 개발할 뿐 아니라 무모하고 도발적인 형태로 핵무기를 운반하기 위한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북한은 핵 기술을 확산시킨 과거가 있기 때문에 우려하고 있다”며 “우리는 아직 해야 할 일이 있다”고 강조했다.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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