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말’ 트럼프가 ‘순한 양’ 돌변? 유대계 로비단체 연설서…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22일 19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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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말대장’ 도널드 트럼프(70) 미국 공화당 대선 경선 후보가 ‘순한 양’으로 돌변했다. 유대계 로비단체 ‘미국·이스라엘 공공정책위원회(AIPAC)’ 연례총회에서다.

21일 미국 수도 워싱턴에서 열린 AIPAC 연례총회의 대선 경선 주요 후보 초청행사에서 트럼프는 조심스럽게 말했고 공격적으로 반응하지 않았다고 뉴욕타임스(NYT)와 워싱턴포스트(YP) 등이 보도했다. 이날 트럼프 측은 이례적으로 연설문을 사전 배포했다.

트럼프는 유대인과 결혼해 출산을 앞두고 있는 딸 이반카가 “곧 예쁜 유대인 아기를 낳을 것이다”, “유대인들의 영원한 수도인 예루살렘으로 미국 대사관(현재 텔아비브에 위치)을 옮기겠다”고 하는 등 유대인들의 마음을 사는데 공을 들였다. 이스라엘의 안보를 가장 심각하게 위협할 수 있는 나라로 꼽히는 이란과 핵협상을 진행해온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강하게 비판했다.

트럼프는 그동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갈등에 미국이 ‘중립적 자세’를 취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민주당 대선 경선 유력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69)이 이스라엘 안보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것과도 큰 차이가 난다.

그가 이날 표변한 이유는 미국 사회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유대인들의 마음을 얻지 않으면 대선 승리가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유대인은 미국 전체 인구의 3%인 600여 만 명이지만 금융계를 중심으로 정·관계와 법조 등에 포진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1954년 미국 내 유력 유대인 지도자들이 설립한 AIPAC은 이스라엘의 국익 수호를 핵심 가치로 내세우며 미 정·관계를 상대로 강력한 로비활동을 벌여왔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트럼프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랍비(유대교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많은 유대인들은 트럼프가 그동안 보여 온 ‘무슬림 이민자 반대’ 관련 발언 등에서 인종주의, 나아가 세계 제2차대전 때 나치가 저지른 유대인 학살의 잔인함이 느껴진다고 지적한다. 유대인 인구가 가장 많은 뉴욕에서 태어나 활동하고, 유대인 사위까지 얻었음에도 트럼프가 유대인들의 의심을 받는 이유다.

한편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이날 행사에서 “이스라엘의 안보는 협상 불가능하다”고 말해 큰 박수를 받았다. 트럼프와 경쟁 중인 공화당의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46·텍사스)과 존 케이식 오하이오 주지사(64)도 이스라엘의 안보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유대인인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75·버몬트)은 유타 주 유세 일정을 이유로 나오지 않았다. 샌더스 의원은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린 유세에서 “대통령에 당선되면 이스라엘뿐 아니라 팔레스타인과도 친구가 되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경선에서 유대인임을 밝힌 적이 없으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갈등에 중립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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