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다른 골목 몰린 룰라… 검찰수사 피하려 꼼수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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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정부 수석장관직 맡아… 호세프 대통령과 ‘은밀한 거래’

‘성공한 대통령’으로 평가받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브라질 대통령이 막장 정치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재임 시절 저지른 부패 혐의에 대해 주(州) 검찰의 수사망이 좁혀오자 룰라 전 대통령은 16일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의 수석장관 제의를 받아들였다. 수석장관은 행정부처를 총괄하는 핵심 요직이다.

국민 반응은 싸늘하다. 사법당국의 수사를 피하기 위한 ‘정치적 꼼수’로 장관이 된 그를 곱게 보는 시선은 없다. 브라질 법률에 따르면 각료가 될 경우 주 검찰의 수사나 지역 연방법원 판사의 재판으로부터 면책된다. 그 대신 연방대법원 대법관이 주관하는 재판만 받게 되는데 대부분 대법관은 룰라 전 대통령과 호세프 대통령이 임명한 사람들이다. 호세프 대통령 역시 탄핵 위기를 모면할 목적으로 자신의 정치적 스승인 룰라 전 대통령을 복귀시켰다는 비난이 일고 있다.

설상가상(雪上加霜) 두 사람의 ‘은밀한 거래’가 담긴 통화 내용이 이날 오후 폭로됐다. 룰라 부패 수사를 지휘해온 남부 파라나 주 연방법원의 세르지우 모루 수사판사가 룰라 전 대통령과 호세프 대통령 간 전화 통화를 감청한 자료를 언론에 공개한 것이다. 호세프 대통령은 통화에서 룰라 전 대통령에게 “필요한 경우에 대비해 장관 임명장을 보내주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자 분노한 시민들이 다시 거리로 몰려나왔다. 13일 600만 명(시위대 주장)이 전국 주요 도시에서 ‘룰라 체포’와 ‘호세프 퇴진’을 외친 뒤에도 반성할 기미가 없자 국민의 공분이 커진 것이다. 이날 밤 상파울루 브라질리아 등 주요 도시에선 시민 수만 명이 모여 호세프 대통령과 룰라 수석장관의 퇴진을 요구했다. 파문이 커지자 대통령실은 성명을 통해 “룰라 수석장관이 서명식에 참석할 수 없을 경우에 대비해 임명장을 보낸 것”이라고 해명했다. 또 감청 자료를 공개한 모루 판사에 대해 법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USA투데이는 “미쳐 돌아가고 있는 브라질 정치가 새로운 춤판을 벌이고 있다”고 꼬집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룰라는 브라질이라는 비행기의 부조종사다. 역대 가장 인기가 없는 대통령(호세프)에게 조종간을 넘겨받아 국정 운영을 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브라질#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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