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2일 일본 최대 야쿠자 조직인 야마구치파 총본부를 수색 중인 일본 효고 현 경찰. 도로운송법 위반 사건을 조사한다는 명목이었지만 그해 조직 분열 이후 내부 정보 수집을 위한 조치였던 것으로 보인다. 아사히신문 제공
“탕, 탕, 탕!”
지난달 27일 오후 8시 45분경.
일본 수도권 사이타마(埼玉) 현 야시오(八潮) 시의 주택가에서 어둠을 가르는 여러 발의 총소리가 울렸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일본 야쿠자 조직인 고베 야마구치파의 간부(67) 집 담벼락에서 여러 개의 탄흔을 발견했다.
3시간이 지난 후 2km가량 떨어진 도쿄(東京) 아다치(足立) 구에서는 고베 야마구치파 소속 조직원이 신원을 알 수 없는 남성 여러 명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했다. 이날 새벽에는 역시 수도권인 가나가와(神奈川) 현에서 야마구치파 건물에 정체 불명의 트럭이 돌진했다.
일본 경찰은 이날 벌어진 3개의 사건이 지난해 8월 일본 최대 야쿠자 조직인 야마구치파에서 고베 야마구치파가 분리돼 나오면서 두 조직 간의 수도권 내 주도권 다툼이 격화된 결과로 보고 있다. ○ 일본 최대 야쿠자 조직 ‘분열’
야마구치파의 분열은 6대 두목 시노다 겐이치(篠田建市·74)가 상납금을 지나치게 늘리고 나고야(名古屋)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자신의 파벌만 지나치게 챙긴 것이 발단이 됐다. 불만이 쌓이자 고베(神戶)의 야마켄(山健) 등 13개 파벌이 지난해 8월 말 독립을 선언했다.
고베는 야마구치파의 발상지이고 야마켄은 5대 두목을 배출한 명문 파벌이다. 이들은 “조직의 정통성은 우리에게 있다”며 ‘고베 야마구치파’를 결성했다. 야마켄의 리더인 이노우에 구니오(井上邦雄·68)가 두목으로 선출됐다.
전체 조직의 30%가량이 빠져나가자 분노한 시노다는 회의를 소집해 이노우에 등 5명에게 ‘절연(絶緣)’, 8명에게 ‘파문(破門)’이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절연’은 어떤 경우에도 조직에 돌아올 수 없으며, ‘파문’은 조직에서 일단 추방되지만 경우에 따라 돌아올 수 있다.
두 조직은 서로 정통성을 주장하며 일본 전역에서 크고 작은 충돌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10월 나고야의 번화가에선 야마구치파 핵심 간부가 고베 야마구치파 소속 15명에게 야구 배트로 습격을 당했다. 같은 달 나가노(長野) 현에서는 고베 야마구치파로 옮기자고 주장하던 야마구치파 조직원이 간부의 총에 살해됐다. 상대 사무실에 화염병을 던지거나, 총을 쏘거나, 차량으로 돌진하는 일도 빈번하다.
일본 경찰은 두 조직의 분열 직후 “강하게 단속해 대규모 충돌 사태를 억누르겠다”고 밝혔다. 1985∼1987년에도 야마구치파가 분열해 잇따른 총격 사건 등으로 야쿠자와 민간인 25명이 죽고 70명이 다친 전례가 있다. 주로 지방에서 발생하던 충돌이 이번에 수도권에서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심상찮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 정부 단속에 야쿠자 ‘쇠락의 길’
야마구치파는 1915년 야마구치 하루키치(山口春吉)가 고베 항 노동자 50여 명과 함께 결성했다. 마약과 도박, 부동산 등 돈이 되는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며 급속히 세력을 불렸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1989년 기준으로 야쿠자의 수입은 1조3000억 엔(현재 환율로 14조3000억 원)에 달했다.
하지만 일본 경제가 침체되고 정부가 1992년 ‘폭력단대책법’을 만들어 단속에 나서면서 조금씩 위축됐다. 정부는 조직원이 5명 이상 모이기만 해도 체포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고 조직 간 항쟁에 시민이 휘말렸을 경우에는 두목이 배상 책임을 지도록 했다. 지방자치단체들도 야쿠자와 거래를 금지하는 조례를 만들며 숨통을 조였다.
이런 상황에서 분파별로 월 100만 엔(약 1100만 원) 안팎의 상납금을 포함해 명절 축하금 등 연간 3000만 엔(약 3억3000만 원)을 요구하는 야마구치파의 방침이 내부의 반감을 산 것이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고베 야마구치파는 상납금을 월 10만∼30만 엔(약 110만∼330만 원)으로 낮추고 명절 축하금을 면제하며 세력 불리기에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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