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4냐 4대5냐… 美대선과 맞물린 연방대법 ‘保革 전투’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15일 03시 00분


보수파 거두 스캘리아 대법관 사망… 오바마 “적절한 시기에 후임 임명”
공화당 “차기 대통령에 맡겨야”… 보수-진보 비율 역전될지 주목

미국 연방대법원에서 보수의 목소리를 대변해 온 앤터닌 스캘리아 대법관이 13일 향년 80세를 일기로 숨을 거뒀다. 스캘리아 대법관은 연휴를 맞아 지인들과 서부 텍사스의 사냥 리조트를 방문했는데 13일 오전 아침식사를 하러 나타나지 않은 이후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 조사 결과 자연사로 추정됐다.

대선을 앞둔 그의 죽음으로 미 정치판이 요동치고 있다. 9명인 연방대법관의 보수와 진보 비율은 5 대 4. 스캘리아 대법관 후임에 누가 임명되느냐에 따라 연방대법원의 이념 지형이 바뀔 수 있다. 연방대법관은 종신직이다.

재임 중 2명의 진보 대법관을 임명했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성명에서 “후임자를 지명해 헌법상 주어진 내 책임을 완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자 공화당은 “차기 연방대법관 결정에는 국민의 뜻이 반영돼야 한다”(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공화당 대선 주자인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과 마코 루비오 상원의원도 차기 대통령에게 임명권을 넘길 것을 요구했다.

미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이 지명하는 연방대법관은 상원의 권고와 동의를 받아 대통령이 임명한다. 따라서 오바마 대통령이 자신의 권한을 행사해 진보 인사를 지명할 경우 연방대법관의 비율이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절 이후 처음으로 보수 우위에서 진보 우위로 기울게 된다. 공화당이 대법관 1명의 빈자리를 메우겠다는 대통령 방침에 강하게 반발하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임기가 1년도 채 남지 않은 오바마 대통령이 결정할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법관 임명은 대통령의 권한이지만 공화당이 다수를 차지하는 상원에서 동의안을 통과시키지 않으면 난관에 봉착할 수 있다. 벌써부터 민주당 쪽에선 메릭 갈런드 워싱턴 연방항소법원장(63)을 비롯해 인도계인 스리 스리니바산 연방항소법원 판사(48), 베트남계인 재클린 응우옌 제9순회항소법원 판사(50·여) 등이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스리니바산 판사 또는 응우옌 판사가 임명된다면 첫 아시아계 연방대법관이 탄생하게 된다.

타계한 스캘리아 대법관은 보수파의 마지노선이었다. 이탈리아계로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그는 레이건 행정부 때인 1986년 임명돼 현직 최장(30년) 대법관 자리를 지키며 보수적 가치의 수호자를 자처해 왔다.

중도 보수 성향 대법관들이 오바마 대통령의 건강보험 개혁을 지지하고 동성결혼 전면 허용에 찬성할 때마다 그는 직설적 화법으로 반대했다. 지난해 말에는 미 대학의 소수인종 우대 정책(affirmative action) 위헌 여부를 심의하면서 “미국 흑인 과학자의 대다수는 명문대 출신이 아니라 중하위권대 출신”이라는 흑인 비하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CNN은 대법관 임명을 둘러싼 힘겨루기에 대해 올해 행정부(대통령 선거)와 입법부(상하원 선거)뿐 아니라 사법부의 향방까지 결정된다는 점에서 “미 역사상 가장 큰 전투 중 하나가 치러질 것”이라고 전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미국#대선#앤터닌 스캘리아#대법관#연방대법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