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메카’ 된 재난의 땅… 파격지원에 젊은 인재 ‘밀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19일 03시 00분


코멘트

[카트리나 10년, 현장을 가다<상>]

뉴올리언스=하정민 기자
뉴올리언스=하정민 기자
1833명이 숨지고 123조 원의 재산 피해를 남긴 미 최악의 자연재해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뉴올리언스를 강타한 지 꼭 10년이 된다. 미국은 2005년 8월 29일 카트리나 발발 1년여가 지난 2006년 9월 30일 재난관리개혁법(일명 포스트 카트리나 법)을 제정하고 본격적인 재건 작업을 시행해 왔다. 이달 초 루이지애나 주 경제개발청(LED) 초청으로 찾은 뉴올리언스는 10년 전과는 딴판으로 활기에 넘쳤다. 과감한 규제개혁과 창업정신으로 시를 재난의 도시에서 혁신의 도시로 바꾼 민관의 노력이 그 비결이었다.

○ 창업의 메카로 거듭난 도시

6일 0시 이곳 최고 관광지인 프렌치 쿼터의 버번 스트리트. 한밤중임에도 발 디딜 틈 없이 거리를 가득 메운 관광객들과 길 양쪽에 즐비한 재즈 바에서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선율 등 겉으로는 10년 전 대재앙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시 세수(稅收)의 약 40%를 차지하는 최대 산업인 관광업도 호황이다. 2014년 뉴올리언스를 찾은 국내외 관광객은 952만 명으로 5년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카트리나 직후인 2006년 관광객이 370만 명에 그쳤던 것과 대조적이다.

인구 유입도 가파르다. 카트리나 직전 48만5000명이었던 인구는 2006년 22만3000명까지 줄었다가 지난해 말 38만4000명을 회복했다. 미 인구통계국에 따르면 2010∼2014년 뉴올리언스 인구 증가율은 11.8%로 50대 대도시 중 오스틴(15.5%)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10년 전 대재앙 카트리나가 뉴올리언스의 모든 것을 앗아갔던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변화이다. 카트리나는 2005년 한 해에만 뉴올리언스에서 9만 개의 일자리를 앗아갔고 이로 인한 임금 손실액만도 30억 달러(약 3조3900억 원)에 달했다. 이 도시가 재난을 이겨 나간 비결은 ‘과거와는 달라야 한다’는 절박감이었다.

뉴올리언스는 석유 등 원자재가 풍부하고 강과 바다를 모두 보유한 덕에 별 노력 없이도 먹고살 수 있는 도시로 꼽혔다. 이에 카트리나 전까지만 해도 외부 투자와 사람을 받아들이는 데 배타적이어서 ‘부자의 저주’라는 말까지 낳았다. 하지만 카트리나 이후 시를 살리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해야 하며 능력있는 다른 지역 젊은이들을 대거 유치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창업’을 위해 찾아오는 젊은 인재들에게 펼친 파격적인 지원정책이었다.

시는 우선 지역 주민을 고용한 정보기술(IT)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에 기업 운영비의 25%, 임금의 35%를 세액 공제해 주는 세제 혜택을 주었으며 도시 외곽 땅을 시세보다 낮은 비용에 빌려주면서 시세보다 낮은 금리의 대출 프로그램도 알선해 주었다.

현재 뉴올리언스에서는 인구 10만 명당 471개의 스타트업 창업이 이뤄지고 있는데 미국 전체 평균보다 67%나 높은 수치이다. 미 언론들은 스타트업의 신 메카로 떠오른 뉴올리언스를 ‘실리콘 바이우(Silicon bayou·실리콘밸리와 뉴올리언스 인근 늪지대를 의미하는 바이우의 합성어)라 부른다.

미치 랜드루 뉴올리언스 시장(55)은 “스타트업 창업은 고학력 젊은이들의 고임금 일자리 창출로 직결되는 데다 이들이 자신을 위한 소비를 아끼지 않기 때문에 외식, 레저, 패션 산업 등으로의 파급 효과도 크다”고 했다.

2005년 8월 카트리나로 완전히 물에 잠긴 뉴올리언스 시 전경. 주요 도로와 주택가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물속에 잠겨 있다(위쪽 사진). 카트리나 발발 10주년이 된 올해 10월 6일 0시경 뉴올리언스의 유명 재즈바 ‘프레저베이션 홀’ 전경. 재즈 거장 루이 암스트롱을 비롯한 유명 음악가가 연주했던 이곳에는 밤낮에 관계없이 수많은 관광객이 몰려든다(아래쪽 사진). 뉴올리언스 시 제공·뉴올리언스=하정민 기자 dew@donga.com
2005년 8월 카트리나로 완전히 물에 잠긴 뉴올리언스 시 전경. 주요 도로와 주택가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물속에 잠겨 있다(위쪽 사진). 카트리나 발발 10주년이 된 올해 10월 6일 0시경 뉴올리언스의 유명 재즈바 ‘프레저베이션 홀’ 전경. 재즈 거장 루이 암스트롱을 비롯한 유명 음악가가 연주했던 이곳에는 밤낮에 관계없이 수많은 관광객이 몰려든다(아래쪽 사진). 뉴올리언스 시 제공·뉴올리언스=하정민 기자 dew@donga.com
○ 남부의 할리우드로 변신

실제로 현재 뉴올리언스의 영화와 IT 산업은 할리우드(로스앤젤레스)나 실리콘밸리(샌프란시스코)에 비견될 만큼 급성장하고 있다. 뉴올리언스 영화협회에 따르면 2014년 루이지애나 주에서 촬영된 장편 영화는 총 18편으로 캘리포니아 주와 캐나다(각각 15편), 영국(12편)보다 많았다. 2015년에도 ‘캐리비안의 해적 5’, ‘판타스틱 4’ 등 쟁쟁한 흥행 예정작은 물론이고 ‘NCIS 뉴올리언스’, ‘트루 디텍티브’ 등 인기 드라마가 이곳에서 촬영됐다.

브래드 피트와 앤젤리나 졸리 커플, 샌드라 불럭, 채닝 테이텀 등 유명 영화배우가 속속 뉴올리언스에서 집을 사들일 정도. 뉴올리언스가 ‘남부의 할리우드(Hollywood south)’로 불리는 이유다.

현재 주 정부는 1편의 영화 촬영비 중 30만 달러 이상의 금액에 대해서는 30%의 세액공제를 해 주고 있다. 다른 주가 세액 공제가 아예 없거나 한 자릿수의 세액공제를 해주는 것과 비교하면 파격적 혜택이다. 또 1편의 영화 촬영 시 소요되는 전체 인건비 중 10%를 지역민에게 지급하면 10%의 세액공제를 추가로 해준다.

이곳에서 만난 싱크탱크인 데이터센터의 앨리슨 플라이어 소장(54)은 “관광업은 저소득층의 저임금 일자리에 국한돼 있고 경기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문제점이 있다”며 “그런 면에서 최근 뉴올리언스의 산업 다변화는 매우 고무적”이라고 말했다.

랜드루 시장은 “카트리나 이후 주민들 사이에 ‘무슨 일을 하든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식으로 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널리 형성됐다”며 “과거와 똑같은 방식을 되풀이하면 또 다른 재앙을 맞이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뉴올리언스 경제 회생의 원동력”이라고 강조했다.

뉴올리언스=하정민 기자 dew@donga.com
#허리케인#카트리나#뉴올리언스#재난관리개혁법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