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대 야구부, 94연패 사슬을 끊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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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특기생 없는 동호인 모임… 봄-가을 대학리그서 만년꼴찌
2010년 ‘프로’코치 영입 타격 강화 5년만에 1승… 선수들 감격의 눈물

경기가 끝나자 선수들은 모두 투수에게 뛰어가 서로 얼싸안았다. 관중도 함성을 지르며 일어나 박수를 쳤다. 응원단 중에는 눈물을 흘리는 이도 있었다.

23일 일본 도쿄(東京)에서 벌어진 도쿄대와 호세이(法政)대의 경기에서 도쿄대가 이기는 ‘이변’을 연출했다. 도쿄대는 연장 10회에 6-4로 승리했다.

도쿄대는 2010년 가을 리그에서 와세다(早稻田)대를 이긴 이후 5년 동안 94연패를 하다가 이날 값진 1승을 올렸다. 이날 경기를 뛴 도쿄대 선수 중에는 재학 기간 중 1승을 경험한 선수가 한 명도 없었다. 승리 투수가 된 시바타 아키히로(柴田叡宙)는 “연패를 끊기 위해 입학했다. 다행이다”라고 말했다.

일본 최고의 명문대인 도쿄대는 1919년 야구부를 창립했으며 1925년 대학 리그에 가입했다. 그해 ‘6대학(도쿄대, 와세다대, 게이오대, 릿쿄대, 메이지대, 호세이대) 야구 리그’가 탄생했다. 도쿄대의 리그 최고 성적은 1946년에 기록한 2위. 그 후 만년 꼴찌였다.

도쿄대의 연패에는 이유가 있었다. 다른 대학은 체육특기생 제도가 있어 유망 고교 야구선수들을 뽑지만 도쿄대는 그런 제도가 없었다. 공부로 1등 하는 학생들이 모여 과외 활동으로 야구를 할 뿐이었다. 야구 평론가인 에모토 다케모리(江本孟紀) 씨는 “도쿄대가 100연패, 200연패를 해도 이상할 게 없다. 야구는 몸이 자산이다. 도쿄대에 입학할 정도로 공부해선 야구 할 몸이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그러다 보니 다른 대학 야구팀 사이에선 ‘도쿄대에만은 절대 져선 안 된다’는 말까지 생겼을 정도였다.

하지만 도쿄대는 무너지지 않았다. 2010년 프로야구 주니치(中日) 선수였던 야자와 겐이치(谷澤健一)를 코치로 영입해 타격을 강화했다. 하루 1000개의 스윙을 의무화했다. 최근에는 실책이 많다고 판단해 내야수들이 ‘볼 돌리기’ 연습에 집중했다. 선수들은 ‘볼 돌리기를 55초 안에 10차례 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하루 1시간씩 연습을 반복해 왔다.

2012년 도쿄대 지휘봉을 잡은 뒤 처음으로 승리한 하마다 가즈시(濱田一志) 감독은 경기 후 언론 인터뷰에서 “여러분에게 신세를 졌다. 감사를 말하기 시작하면 24시간 이상 계속해야 한다”며 웃었다.

대학 야구임에도 불구하고 도쿄대의 1승은 일본에서 ‘빅뉴스’였다. 아사히신문, 도쿄신문, 산케이신문은 24일 자 1면에 사진과 함께 도쿄대의 1승 소식을 전했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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