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의 굴욕? 복수?… 남동부 유럽 새 가스관 사업 폐기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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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 우회 ‘사우스스트림’ 계획… 서방 외교-경제 압력에 종료 선언
남동부 유럽에 영향력 확대 좌절… 터키에 새 가스허브 건설 추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사진)이 서방의 제재 압력에 백기를 들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우회하는 새로운 가스관으로 야심 차게 준비해 온 ‘사우스스트림(South Stream)’ 건설 계획을 전격 폐기한 것이다.

터키를 국빈 방문한 푸틴 대통령은 1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사우스스트림 가스관이 지나는 불가리아로부터 관련 허가를 받지 못했다”며 “유럽연합(EU)이 건설을 원하지 않는 상황에서 더이상 사업 투자를 진행할 수 없다”고 밝혔다. 동행한 알렉세이 밀레르 러시아 국영 가스회사 가스프롬 사장도 기자들에게 사업이 종료됐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 결정에 대해 “보기 드문 푸틴의 외교적 패배이자 보기 드문 미국과 EU의 승리”라고 평가했다. 사우스스트림 건설로 남동부 유럽에 영향력 강화를 시도했으나 서방과 관계가 악화되면서 무산됐다는 분석이다. EU의 비협조를 이유로 댄 것은 변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사우스스트림은 흑해 해저 터널을 거쳐 불가리아 세르비아 헝가리 오스트리아 등 남동부 유럽 6개국에 천연가스를 공급하는 220억 달러(약 24조3386억 원) 규모의 초대형 사업으로 2012년 불가리아와 세르비아에서 착공했다. 그러나 3월 러시아의 크림 반도 합병에 EU가 경제 제재에 나서면서 난항을 겪기 시작했다. 가스프롬의 경영진이 제재 대상에 포함되자 EU 회원국인 불가리아가 6월 공사 중단 조치를 내렸다.

우크라이나를 거치는 다른 유럽행 가스관과 달리 사우스스트림은 흑해 해저터널을 통하기 때문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서방의 제재를 피해 유럽에 가스를 수출할 수 있는 새 수출로가 될 것으로 자신해 왔다. 반면 다른 유럽 국가들은 이미 유럽 가스 수입의 30%를 차지하는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가 더 높아질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해 왔다.

알렉산드르 노바크 러시아 에너지장관은 “외교·경제적 압박에 푸틴 대통령이 직접 사업 폐기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미 국무부의 에너지 담당 외교관을 지낸 카를로스 파스쿠알 씨는 “유럽 소비자들은 추가 가스관 건설로 생길 수 있는 더 많은 비용을 내지 않아도 되게 됐다”며 “유럽의 타격은 없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남부와 터키를 연결하는 일명 ‘블루스트림(Blue Stream)’ 프로젝트를 통해 터키와 에너지 협력을 늘려 맞서겠다는 방침이다. 러시아는 터키 가스 공급량을 연간 190억 m³로 20% 더 늘리는 한편 가격도 내년부터 6% 내리겠다고 밝혔다. 밀레르 가스프롬 사장은 “가스프롬이 터키와 그리스 국경에 새로운 가스 허브를 건설하겠다”고 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는 이날 러시아와 터키의 에너지 협력에 대해 “NATO 회원국인 터키는 러시아 제재에 동참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NYT는 “터키가 서방과 러시아 사이에서 줄타기를 통해 이득을 챙기고 있다”고 전했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푸틴#러시아#사우스스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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