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만에 열린 ‘판도라 상자’… 가톨릭 保革충돌 예고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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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 주교회의 중간보고서 ‘동성애-이혼 선택적 허용’ 시사
금기어 거론 자체가 혁명적 변화… 인권단체 “어둠 속의 빛” 환영
주교 41명은 “공식 반대” 의견… 보수파 “최종 결론 아니다” 폄하
18일 찬반투표로 최종보고서 확정… 중대 결정은 2015년 총회로 미룰듯

세계주교대의원회의(주교 시노드)가 가족과 성 문제에 보수적 원칙을 지켜온 가톨릭교회의 기존 노선에 일대 전환을 가져올 것인가, 아니면 가톨릭교회 내 보수-혁신 갈등을 불러올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결과를 불러올 것인가.

주교 시노드가 13일 발표한 중간 보고서에서 기존 교리가 변경된 것은 없다. 하지만 그동안 엄격하게 금지해온 동성애, 이혼, 동거를 선택적으로 허용할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또 교회의 승인을 받지 않은 세속적 결혼과 동거의 긍정적 면모를 이해해야 한다고 촉구하는 한편 이혼으로 상처를 입은 이들이 차별 없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피임에 대해서도 신자 상당수가 교회의 금지 방침을 어기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 유화적 의견을 제시했다.

언론들은 “보고서가 앞으로 몰고 올 ‘혁명적 변화’를 예고한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AP통신은 “결혼과 이혼, 동성애, 피임 같은 중대 사안에 대한 이번 보고서의 어조는 거의 혁명적 수용”이라며 “동성애를 2000년간 죄악시해온 가톨릭에서 이 같은 문제 제기만으로도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평했다. 뉴욕타임스는 이번 주교 시노드를 “50여 년 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가장 중요한 회의”라고 평가하면서 보고서 내용을 둘러싼 교회 내 보혁 갈등이 앞으로 격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1962∼65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미사 봉헌 때 라틴어가 아닌 각국 언어의 사용, 소녀 복사 허용, 타 종교에 포용적 태도를 채택했다.

이 같은 평가는 교계 안팎의 반응에서도 확인된다. 인권단체와 진보적 신학자들은 지지 입장을 보였다. 미국 내 최대 동성애 권리보호 단체인 휴먼라이츠캠페인(HRC)의 채드 그리핀 회장은 “로마의 지각변동이자 어둠 속의 한 줄기 빛”이라며 환영했다. 제임스 마틴 예수회 신부는 “동성애자에 대한 가톨릭의 혁명적인 변화”라며 “주교 시노드가 신자들의 복잡한 현실세계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가톨릭 내 보수파는 그 의미를 깎아내렸다. 미국 보수파를 대표하는 레이먼드 레오 버크 추기경은 “상당수의 주교가 (이번 보고서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 뉴욕의 대주교인 티머시 돌란 추기경은 “보고서는 단순히 초안일 뿐이며 최종 결론까지는 논의할 것이 많다”고 말했다.

주교 시노드에 참석한 주교들 사이에서도 만만치 않은 내홍이 엿보인다. 로이터통신은 13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배석한 가운데 열린 주교 시노드 회의에서 문제의 중간 보고서가 낭독된 뒤 41명의 주교가 공식 반대 의사를 나타냈다고 전했다. 보고서 역시 이번 회의의 핵심 사안 중 하나인 이혼한 신자와 재혼한 신자의 영성체 참여에 대해 주교들의 의견이 갈렸다고 적시했다.

이번 주교 시노드의 최종 보고서는 폐막 전날인 18일 투표권을 가진 참석자 191명의 찬반 투표로 확정된다. 최종 보고서는 교황에게 제출되는 동시에 내년 정기총회 준비를 위한 ‘질의서’를 동봉해 각 지역 교회 주교회의에 전해진다. 이번 주교 시노드는 임시총회이고 내년 10월에 개최될 주교 시노드가 5년에 한 번씩 열리는 정기총회다.

따라서 19일 발표될 최종 보고서에 혁명적 결정이 담기기보다는 내년 정기 주교 시노드로 미뤄질 가능성이 크다. 이번 임시총회에 한국에선 서울대교구장 염수정(안드레아) 추기경과 한국주교회의 의장인 강우일(베드로) 주교가 참여하고 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세계주교대의원회의#가톨릭교회#주교 시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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