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정치기부금 제한 폐지… 돈선거 빗장 풀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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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표현의 자유 침해” 위헌 결정… 정당기부 무제한 등 개인 한도 없애
공화당은 환호… 민주당은 비난

미국 연방대법원이 개인이 기부할 수 있는 정치자금 총액 제한을 폐지하는 판결을 내렸다. 2010년 후보 또는 당과는 독자적으로 선거운동을 하는 슈퍼정치행동위원회(슈퍼팩)가 무제한으로 자금을 모집할 수 있도록 한 판결에 이은 것이어서 미국 정치의 금권화 추세를 가속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연방대법원은 2일 개인이 연방선거 후보 개인이나 정당에 낼 수 있는 정치기부금을 2년 동안 12만3200달러(약 1억3020만 원)로 제한한 연방선거법 조항에 대해 위헌 5명, 합헌 4명으로 폐지 결정을 내렸다. 선거법을 두고 표현의 자유가 먼저냐, 부정 및 금권선거 방지가 우선이냐를 둘러싼 가치의 대립 속에서 전자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보수 성향의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다수 의견을 대표해 “해당 조항은 표현의 자유를 규정한 수정헌법 제1조를 침해하는 것으로 무효”라며 “후보에게 돈을 기부하는 것은 정치적 표현이나 정치적 결사를 통해 선거 절차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라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한 개인이 후보자 1명에게 기부할 수 있는 정치자금 한도는 선거당 2600달러를 넘지 못하도록 한 현행 규정을 유지했다. 하지만 한 개인이 여러 후보에게 줄 수 있는 기부금 총액을 4만8600달러로, 정당 기부금 총액을 7만4600달러로 제한한 규정을 폐지함으로써 사실상 개인의 정치자금 기부 제한을 풀었다.

예를 들면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 사는 한국 교민 김모 씨는 올해 11월 연방 하원의원 선거 12선에 도전하는 에드 로이스 외교위원장(공화)에게 여전히 2600달러밖에 기부할 수 없다. 하지만 같은 주 후보인 마이크 혼다 의원 등 다른 후보들에게도 2600달러씩 인원 제한 없이 기부할 수 있다.

후보 개인이 아니라 정당에 주는 기부금도 과거 한도는 7만4600달러였지만 앞으로 무제한 기부가 가능하다.

이에 앞서 연방대법원은 2010년 일련의 판결을 통해 선거에서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기 위해 독립적으로 홍보비 등을 지출하는 슈퍼팩에 대해 개인과 기업, 노동조합으로부터 무제한으로 자금을 수수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줬다.

결국 미국 유권자들은 ‘후보당 2600달러’ 제한만 지키면 여러 후보자와 정당, 슈퍼팩 등에 무제한적으로 정치자금을 쏟아부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다수 의견을 낸 대법관 5명은 모두 보수적 성향의 인사들이다. 소수 의견이 제기한 금권선거 우려에 대해 로버츠 대법원장은 “총액 제한으로 부패나 뇌물을 막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반면 진보 진영의 스티븐 브레이어 대법관은 소수 의견에서 “2010년 선거자금의 빗장을 푼 데 이어 오늘 결정으로 봇물이 터지는 게 아닌지 우려된다”며 “정부 기관의 정치적 중립성 보호에 대한 중요성을 간과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치권에서도 보수 성향의 공화당은 환호하고 진보 성향의 민주당은 비난하는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실제 선거에서 어느 당에 유리하게 작용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동안 슈퍼팩에 몰렸던 자금이 후보자와 정당으로 이동해 정당 정치가 더 활성화되는 순기능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워싱턴=신석호 특파원 kyle@donga.com
#미국#정치기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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