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일간지 “비리고발 기자 석방하라” 1면 전면 게재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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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재무문제 파헤치다 체포되자… 언론자유 요구-성명발표로 정면 대응
정부통제 공개 반발 상징적 사건… 제2 ‘난팡주말사태’로 번질수도

기업의 재무 문제를 보도한 후 경찰에 구속된 동료 기자의 석방을 요구한 신콰이보 1면 기사. 사진 출처 신콰이보 홈페이지
기업의 재무 문제를 보도한 후 경찰에 구속된 동료 기자의 석방을 요구한 신콰이보 1면 기사. 사진 출처 신콰이보 홈페이지
“(체포한) 그(기자)를 석방해 달라.”

중국 광둥(廣東) 성의 유력지가 1면 전면을 할애해 체포된 자사 기자의 석방을 요구하는 기사를 게재했다. 겉으로는 정중하게 기자 석방을 요청했지만 내용에서는 중국 공산당에 언론 자유를 요구하고 공개적으로 항의하는 성격을 띠고 있어 파문이 예상된다. 중국의 유력 신문이 1면에 이런 글을 실은 건 처음이다. 신문은 또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를 통해 이번 사건을 설명하는 별도의 성명까지 발표하며 정부에 정면 대응했다.

광둥 성 광저우(廣州)에 본사를 두고 있는 신콰이(新快)보는 23일 1면에 ‘그를 석방해 달라(請放人)’는 제목의 호소문을 실었다. 기사는 이름을 밝히지 않은 평론원(논설위원) 명의로 나왔다. 신콰이보는 “천융저우(陳永洲) 기자가 중롄중커(中聯重科)라는 회사의 재무 문제를 보도했다가 후난(湖南) 성 창사(長沙) 경찰에 잡혀갔다”며 “우리는 외친다. 그를 석방해 달라”고 밝혔다.

신문은 “그가 지난주 금요일(18일)에 잡혀갔지만 우리는 아무 소리도 못했다. 토요일 일요일 월요일 화요일에도 한마디도 내지 못했다”며 “왜냐하면 사람의 안전이 첫째라고 생각해서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공공의 정의를 돌보지 않고 혁명과 희생과 헌신의 용기가 없다면 정말로 유약하고 이기적이며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주장했다.

신문은 이어 “책임 있는 보도를 하면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 우리가 순진했다”며 “잘못이 있다면 중롄중커의 광고비와 접대비 5억1300만 위안(약 890억 원) 전체를 광고비라고 잘못 쓴 것”이라고 밝혔다. 탐사보도 전문 기자인 천 기자는 5월부터 건설 중장비 제조업체인 중롄중커의 재무 비리를 고발하는 15편의 기사를 내보내 기업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체포됐다.

신콰이보의 1면 기사는 갈수록 강화되는 정부의 통제에 정면으로 반발하는 상징적 사건으로 해석된다. 시진핑(習近平) 체제 들어 중국 선전 당국은 기자 25만 명을 상대로 마르크스주의와 반일(反日) 교육 등을 실시하며 이념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앞서 8월 29일에도 신콰이보의 류후(劉虎) 기자가 웨이보에 공상총국 마정치(馬正其) 부부장의 비리를 폭로했다가 구속됐다. 같은 달 29일에도 프리랜서 기자 거치웨이(格棋偉)가 고위 관료 자제들의 죄상을 공개했다가 체포됐다. 관영 언론도 예외가 아니다. 23일 현지 언론에 따르면 신화(新華)통신의 영문판 뉴스 기자인 저우팡(周方)은 웨이보에 “장관급 관리들도 모유를 사 먹는다”는 글을 올렸다가 처벌을 받았다.

일각에서는 신콰이보의 이번 대정부 항의가 올해 1월 발생한 ‘난팡(南方)주말 사태’로 발전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는 전망이 나온다. 난팡주말은 헌정(憲政)을 촉구하는 글을 실었다가 선전 당국에 의해 제지되자 전면 파업을 했고, 광저우 시민들이 거리 시위를 벌였다.

신콰이보는 23일 오후 4시경 자사 웨이보에 ‘천융저우 기자 구속 사건에 대한 설명’이라는 일종의 성명서에서 “기자의 정당한 취재와 감시 기능은 직무 행위이자 사회적 책임”이라며 “기자의 정당한 권리를 결연히 수호할 것”이라고 밝혔다. 신콰이보 관계자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앞으로 웨이보를 통해 우리의 입장을 전하겠다. 주시해 달라”고 말했다.

중국 누리꾼들은 이번 사건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신콰이보 기사에는 이날 1000여 건의 댓글이 붙었다.

아이디 ‘위저우정리(宇宙正理)’는 “신콰이보가 (이런 글을) 1면에 싣다니 탄복했다. 중국에는 저런 매체가 부족하다. 인민에게 진상을 알려 달라”고 주장했다.

1998년 창간된 신콰이보는 100만 부의 발행부수를 자랑하는 광둥 성 3대 일간지 중 하나다.

베이징=고기정 특파원 koh@donga.com
#중국 일간지#기자 석방#비리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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