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 vs 러시아 빅매치 돌입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2일 03시 00분


옛 소련서 분리된 6개국과 경제동맹 힘겨루기

모스크바가 유럽연합(EU)의 동진(東進) 정책에 제동을 걸고 있다. EU로 기울고 있는 옛 소련 위성국가(CIS·독립국가연합)들을 다시 러시아의 영향력 아래로 끌어모으기 위한 크렘린의 역습이 거세다.

EU는 2009년 5월부터 우크라이나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몰도바 벨라루스 조지아(옛 그루지야) 등 옛 소련에서 분리된 6개 국가와 자유무역, 비자 면제, 경제 협력을 토대로 하는 ‘EU 동부 파트너십’ 프로그램을 추진해 왔다. EU는 11월 리투아니아에서 열리는 EU 정상회의에서 이 국가들과 자유무역협정(FTA) 성격의 동맹협정을 체결할 계획이디.

이러한 유럽의 동진은 러시아의 지정학적 패권주의를 자극했다. 러시아는 2010년 카자흐스탄, 벨라루스와 함께 출범시킨 ‘3국 관세동맹’의 확대를 밀어붙이고 있다. 2015년 옛 소련 국가들을 정치 경제적으로 통합하는 ‘유라시안 연합(EEU)’을 결성해 EU에 대항하겠다는 것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꿈이다. 러시아는 탈(脫)러시아를 꿈꿨던 옛 소련 국가들을 상대로 군사, 에너지, 무역 보복을 통한 전방위 압박을 가하고 있다.

아르메니아의 세르지 사르키샨 대통령은 지난달 3일 모스크바를 방문했다. 11월 EU와의 FTA 체결 발표를 앞둔 시점에서 그는 “EU와의 관계를 끊고 러시아가 추진하는 관세동맹에 가입하고 유라시안 연합에 참여하겠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올해 6월부터 아르메니아와 영토 분쟁을 벌이는 아제르바이잔에 10억 달러어치의 군사무기를 제공하겠다며 아르메니아에 압력을 넣었다. 결국 아르메니아는 러시아로부터 군사적 보호를 받기 위해 관세동맹에 합류하겠다고 굴복했다.

하지만 유럽 경제권과의 통합을 원하는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압박에도 버티고 있다. 7월 말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를 방문해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에게 옛 소련권 관세동맹에 가입할 것을 촉구했으나 거절당했다. 러시아는 바로 다음 날부터 무역 보복에 나섰다. 우크라이나의 대표적 제과업체인 로셴의 초콜릿, 사탕, 과자에 대해 ‘위생상의 이유’를 들어 수입 금지 조치를 내렸다. 세르게이 이바노프 크렘린 행정실장은 1일 “우크라이나가 EU로 기울 경우 러시아와의 항공우주 산업, 조선, 원자력 분야 협력이 중단돼 러시아와의 교역에서 최소 120억 달러를 잃게 될 것”이라고 재차 경고했다.

6월 EU와 FTA 협상을 마친 몰도바도 러시아의 보복을 받고 있다. 지난달 2일 드미트리 로고진 러시아 부총리는 EU에 접근하는 몰도바에 대해 “영토 분쟁을 겪고 있는 지역인 트란스니스트리아의 통제를 상실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러시아는 지난달 11일에 몰도바산 와인에 대해서도 수입을 금지시켰다. 친EU 행보를 보여온 조지아도 주력 상품인 포도주와 광천수의 러시아 수출 길이 막혔다.

러시아의 전방위 압력은 역효과를 불러오기도 했다. 러시아의 맹방인 벨라루스도 러시아의 보호무역주의에 불만을 터뜨렸고 러시아는 보복 조치로 벨라루스산 돼지고기 수입을 금지하고 9월 석유 수출분의 25%를 줄였다. 프랑스의 일간 르몽드는 “러시아는 지정학적 패권을 경제적 이익보다 우선시하는 나라”라며 “옛 소련 국가를 놓고 EU와 러시아 간의 거대한 게임이 시작됐다”고 보도했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유럽연합#러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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