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아베의 日과 장기 외교전 시작… 대화 문은 열어둬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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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의원 선거 이후 日 어디로]<下> 한일 외교전문가들의 제언

“지금도 대화의 문은 열려 있다는 내 말을 중국에 전해 달라.”

22일 오후 일본 도쿄(東京) 자민당사에서 열린 기자회견.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일중 관계 개선 방안을 묻는 중국 기자의 질문에 만면에 웃음을 띠며 이렇게 말했다. 여유와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이었다.

지난해 말 중의원 선거에 이어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 압승한 아베 총리는 다음 선거가 돌아오는 2016년까지 3년간 안정적으로 정권을 운영할 수 있다. 급하게 우경화 정책을 추진하기보다 여론의 추이를 봐가며 최적기를 선택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외교적 뒷심도 강해졌다. 한국으로서는 일본을 상대하기가 한층 까다로워졌다. 관계 회복에 나서려 해도 아베 정권이 언제 우경화 본색을 드러낼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떨치기 어렵다.

○ 아베 총리의 강한 일본 되찾기

아베 총리는 이번에 자민당 참의원 선거 사상 역대 8번째의 성적을 거뒀다. 선거를 치른 121석 중 65석(53.72%)을 확보해 이번 선거만 놓고 보면 단독 과반을 달성했다. 2000년대 이후 성적이 가장 좋았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 시절의 2001년 성적(52.89%·역대 10위)을 뛰어넘었다. 닛케이평균주가와 엔화 가치는 22일 소폭 올라 아베 총리의 경제정책인 아베노믹스 지속 추진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아베 총리는 이번 선거 대승을 발판삼아 중장기적으로 개헌 기반을 조성하기 위한 ‘대국민 여론전’에 나섰다. 국회에서 개헌안을 발의해도 최종적으로 국민투표 과반수 찬성이라는 벽을 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22일 기자회견에서 그는 “우선 국민투표 제도부터 정비할 필요가 있다. 그 위에서 국민적인 (개헌) 논의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국민투표법 정비를 통해 개헌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환기하면서 개헌 세력을 결집해 개헌 발의 요건을 규정한 헌법 96조를 개정하고 궁극적으로 일본의 군대 보유와 전쟁 포기를 규정한 헌법 9조를 개정하는 절차를 밟겠다는 것이다.

국민투표 정비 과제는 △민법상 성인 연령과 공직선거법상 선거권 연령(만 20세)을 국민투표법상 유권자 연령(만 18세)에 맞추고 △공무원의 정치 논의 참가를 보장하고 △개헌 외의 분야에 국민투표를 도입하는 방안이다.

아베 총리 주변 인사들은 노골적으로 개헌 기대감을 나타냈다.

자민당 2인자인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간사장은 자민당 헌법 개정안 초안에 대해 “국민이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 (국민과의) 대화를 위한 집회를 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일왕을 국가 원수로 규정하고 일본을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든 헌법을 국민에게 설득시켜 나가겠다는 의미다.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이번 선거로) 헌법 개정이 처음으로 리얼리티, 즉 현실적인 정치 과제로 국민에게 인식됐다”고 밝혔다.

자민당 뜻대로 일이 착착 진행될지는 미지수다. 따져보면 자민당이 국민의 압도적 지지를 얻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자민당은 비례대표를 제외하고 전국 49개 선거구에서 47석을 얻어 의석수에서는 64.4%를 획득했다. 하지만 득표수는 2264만 표로 절반에 못 미치는 42.7%에 그쳤다. 비례대표 득표수도 1846만 표로 34.5%에 불과했다.

연립 여당인 공명당도 견제구를 던지고 나섰다. 야마구치 나쓰오(山口那津男) 공명당 대표는 이날 집단적 자위권 행사 용인에 대해 “역대 정부가 인정하지 않았다. 쉽사리 할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 일본과의 전선 좁히는 전략적 대응 필요


1년마다 총리가 바뀌던 시절과 180도 달라진 일본. 한일 관계 회복을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분위기가 있지만 서울 외교가에서는 “한국이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다리로만 걷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한일 간 외교 공백이 지나치게 오래 가면 안보나 경제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종원 와세다대 교수는 “일본을 싸잡아 비판하기보다 일본 사회의 잠재적 가능성을 보고 다면적으로 접근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외교 전문가들은 한국이 원칙을 지키되 전략적 대응을 할 것을 주문했다.

도쿄대 방문연구원으로 일본에 체재 중인 이원덕 국민대 교수는 일본과의 전선을 역사인식 문제로 좁힐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개헌이나 집단적 자위권 행사는 한일 문제라기보다 일본 국내 또는 미일, 일중 문제라는 것이다.

한일 관계의 최대 난관인 일본군위안부 문제와 관련해서는 “정부와 시민 사회단체가 함께 참여하는 ‘역사화해위원회’(가칭)를 발족해 한일국교정상화 50주년인 2015년까지 해법을 찾도록 맡기자”고 제안했다. 그동안은 정상회담을 통해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관방장관 담화나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총리 담화를 재확인하고 이를 토대로 미래 한일 관계를 설계하자는 것이다.

우리가 능동적으로 움직일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박철희 서울대 교수는 ‘3단계 접근법’을 제시했다. 1단계로 8·15 때 일본이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관련해 성의를 보이면 2단계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유엔 총회 등 정치적 부담이 적은 다자 외교무대에서 양국 정상이 따로 만나 관계 개선 의지를 확인하자는 것이다. 이를 통해 3단계로 내실 있는 양국 정상회담을 이끌어낼 수도 있다는 제안이다.

일본 학자들 사이에서는 아베 총리의 ‘재발견’이 필요하다는 제안이 많았다. 고하리 스스무(小針進) 시즈오카(靜岡) 현립대 국제관계학부 교수는 “보수층의 지지가 높은 아베 총리 집권 기간이 오히려 일한 관계 개선의 좋은 기회다. 한국에 유리한 정책 결정을 하더라도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사도 아키히로(佐道明廣) 주쿄(中京)대 종합정책학부 교수도 “일한 관계 개선을 위해선 아베 정권을 ‘우경화 정권’이라고만 규정짓지 말고 유연한 자세로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비판은 하더라도 대화의 문을 닫아선 안 된다”고 당부했다.

도쿄=배극인·박형준 특파원 bae2150@donga.com
#아베#대화문#한일 외교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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