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개혁후보 탈락… 대선 ‘하메네이 잔치’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5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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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수호위, 최종후보 8명 선정
라프산자니 전 대통령도 아마디네자드 측근도 심사서 걸러내… 사실상 하메네이 측근 5명이 각축

다음 달 14일 실시되는 이란 대선에 중도개혁파 후보인 악바르 하셰미 라프산자니 전 대통령(79)이 출마하지 못하게 됐다. 2009년 대선에서 개혁파 후보가 패배한 뒤 격렬한 반정부 시위를 경험했던 ‘트라우마’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이란 내무부는 21일 대선에 출마할 최종 후보 8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이 명단은 이란 헌법수호위원회가 대선 후보로 등록한 686명에 대한 적격 심사를 거쳐 결정한 것이다. 최종 후보에는 사이드 잘릴리 이란 핵협상 대표, 알리 악바르 벨라야티 전 외교장관, 모함마드 바케르 칼리바프 테헤란 시장 등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측근 5명이 포함됐다. 중도파 후보 2명과 개혁파 후보 1명도 명단에 들어있지만 지명도와 영향력이 낮아 이번 선거는 사실상 ‘하메네이 측근들만의 잔치’로 치러지게 됐다.

라프산자니 전 대통령과 함께 유력 후보로 꼽혔던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의 전 비서실장 에스판디아르 라힘 마샤에이도 심사에서 탈락했다. 이란 정부는 탈락 사유를 설명하지 않았다. 다만 헌법수호위 대변인은 20일 국영방송을 통해 “차기 대통령은 업무를 수행하는 데 문제없을 정도로 건강해야 한다”며 고령의 라프산자니를 겨냥하는 발언을 한 바 있다. 마샤에이는 아마디네자드 대통령과 함께 이란의 신정(神政)체제에 도전하는 태도를 보여 왔기 때문에 탈락한 것으로 보인다고 미국 워싱턴포스트가 설명했다.

신정국가인 이란에서는 최고위 성직자를 의미하는 최고지도자가 대통령보다 서열이 높고 군 통수권, 대통령 해임권, 사법부 수장 임명권 등 막강한 실권을 갖고 있다. 최고 헌법기관인 헌법수호위도 하메네이가 장악하고 있다.

명단 발표 이후 국내외에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미국 랜드연구소의 알리레자 나데르 연구원은 “이번 이란 대선은 선거가 아니라 (하메네이의) 선택이 돼 버렸다”고 꼬집었다. 패트릭 벤트렐 미 국무부 부대변인은 “헌법수호위가 이란 국민의 뜻이 아니라 정권을 대변하는 인물(하메네이)의 뜻에 따라 후보들을 탈락시켰다”고 비난했다. 아마디네자드 대통령도 “마샤에이에 대한 출마 금지가 철회될 때까지 계속 이의를 제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1979년 이란 이슬람혁명의 주역 중 한 명이자 두 차례 대통령을 지낸 라프산자니의 출마 금지에 이란 사회는 술렁이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특히 이란 인구의 70%를 차지하는 35세 이하 젊은층의 충격이 컸다”고 전했다.

하지만 정치적 부담에도 하메네이는 2009년 대선 이후 벌어진 반정부 시위가 재연될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는 쪽을 선택했다고 로이터통신은 분석했다. 2009년 6월 실시된 대선에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개혁파 후보 미르호세인 무사비 전 총리를 누르고 재선에 성공했다는 발표가 나오자 무사비를 지지하는 시민들이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벌여 적어도 36명이 목숨을 잃었다. 서방의 제재로 경제난이 심화되면서 국민들의 불만이 누적된 상태에서 라프산자니가 출마했다가 낙선할 경우 또 한 차례 홍역을 치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란 정부는 최근 인터넷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등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영국 가디언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은 2009년 하메네이가 얻은 교훈이 현실에 반영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
#이란#개혁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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