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왕 “누가 저 여자 좀 앉으라고 해줄래요” 대처는…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4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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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처 “왕실 별궁의 주말 귀족놀이는 고문”
■ 英 두 여걸의 묘한 애증관계

즉위 이후 무려 12명의 총리를 거친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87)이 윈스턴 처칠 이래 처음으로 마거릿 대처 전 총리(88)의 장례식에 참석하기로 했다. 그녀를 예우한 것이지만 과거 여왕과 대처의 관계는 매우 사무적이었고 때로는 껄끄러웠다고 미국 정치전문매체 데일리비스트가 8일 보도했다. 영국을 대표하는 두 여걸이 서로를 존경하긴 했지만 계급, 성장 환경, 기호의 차이가 낳은 간극을 좁히지 못했다는 것이다.

영국 총리는 매주 화요일 여왕과 독대하며 국사를 논의한다. 앤서니 이든, 해럴드 맥밀런 등 자신의 아버지뻘인 남성 총리와의 회동에 익숙했던 여왕은 상류사회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데다 자신보다 불과 6개월 먼저 태어난 여성 총리를 불편해했다. 특히 영연방 전체의 단결과 화합, 왕실 의전을 중시한 여왕은 이에 관심이 없는 대처가 못마땅했다.

1986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 정책으로 국제사회가 남아공에 대한 제재를 강화할 때 대처는 다른 영연방 국가와 마찬가지로 제재에 동참하라는 여왕의 요구를 거절했다. 남아공과의 교류가 영국 경제에 이익이라는 이유였지만 남아공에서 사업을 하던 아들 마크를 비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구설이 끊이지 않았다. 이 정책에 항의한 상당수 영연방 국가가 그해 열렸던 영연방 체육대회에 불참하자 여왕은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을 깨고 자신의 시종을 통해 ‘대처의 정책이 분열을 낳았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언론이 대서특필하자 대처 또한 분노했다. 대처 사임 후 여왕은 “무슨 일이든 밀어붙이기만 하는 그녀가 불편했다”고 말했다.

대처도 여왕이 껄끄러웠다. 전기 작가 키티 켈리가 여왕 일가에 대해 쓴 책 ‘로열스’에는 여왕과의 독대 전후 대처가 항상 두통약을 찾았다는 내용이 있다. 특히 대처는 여왕이 매년 9월 자신을 왕실의 여름 별궁인 스코틀랜드 발모럴 성으로 초대해 주말을 같이 보내는 것을 싫어했다. 승마, 사격, 셔레이드(한 사람의 몸짓을 보고 해당 동작이 의미하는 말을 알아맞히는 놀이) 등 전형적인 귀족 행사로 보내는 주말이 평민 출신의 대처에게는 전혀 즐겁지 않았던 것.

발모럴 성에서 여왕이 평민 행세를 하며 접시를 직접 치우자 깜짝 놀란 대처가 그를 도우려 했다. 여왕은 “누가 저 여자 좀 자리에 앉으라고 해 줘요”라고 말했다. 대처는 발모럴행을 “총리 재임 중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이자 일종의 고문이었다”고 호소했다.

둘의 관계를 다소 부드럽게 만들어준 사람은 대처의 남편 데니스 대처였다. 데니스는 의전을 중시했고 여왕의 모후와 잘 어울려 여왕을 흡족하게 했다고 데일리비스트는 보도했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대처#여왕#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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