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대법원 동성결혼 소송 뒤엔… 83세 할머니 ‘46년 러브스토리’ 있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3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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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합중국 vs 윈저’ 美대법원 동성결혼 소송 뒤 숨겨진 러브스토리

“저는 5년 전만 해도 동성애자라고 밝히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동성애자도 평범한 미국인이라는 것을 알리려면 누군가 나서야 했기에 이번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27일 미 워싱턴 연방대법원에서 열린 동성결혼 금지법 위헌소송의 주역인 83세의 에디스 윈저 씨는 분홍색 스카프와 백발을 휘날리며 수백 명의 지지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번 동성결혼 소송 뒤에 숨겨진 한 동성 커플의 46년에 걸친 러브스토리를 자세히 전했다.

‘미합중국 대 윈저’ 소송의 원고인 윈저 씨는 46년 전 동성 배우자 테아 스파이어 씨에게서 받은 약혼 브로치를 달고 이날 법정에 등장했다. 윈저 씨는 2009년 스파이어 씨가 사망한 후 36만 달러(4억여 원)의 상속세가 부과되자 동성 커플의 복지혜택을 인정하지 않은 연방법 ‘결혼보호법(DOMA)’ 때문에 이 세금을 내야 한다며 80대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을 법정으로 끌고 갔다. 지난해 하급 법원으로부터 DOMA 위헌 판결을 받아 세금 납부액은 이미 환급받았다. 하지만 동성결혼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높이기 위해 시민단체들과 합심해 연방 대법원에 심리를 요청했다.

IBM 프로그래머 출신인 윈저 씨는 1963년 뉴욕에서 만난 스파이어 씨가 사망할 때까지 해로했다. 사회 시선이 두려워 약혼반지 대신 브로치를 주고받았다. 1977년 스파이어 씨가 다발성경화증과 전신마비로 거동이 불편해진 후에도 그를 떠나지 않았다. 2007년 윈저 씨는 동성결혼을 인정하지 않는 미국법을 피해 병상의 스파이어 씨와 캐나다로 건너가 공항 호텔에서 목사를 불러 결혼식을 올렸다. 그동안 치열한 법정 소송을 치르느라 심장마비까지 앓은 윈저 씨는 심리 후 “대법관들이 우호적인 질문을 많이 던졌다”고 기뻐하며 “소송을 이겨야 그(스파이어 씨)가 천국에서 나를 웃으며 맞이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심리에서 연방 대법관 9명 중 과반인 5명이 DOMA 합헌성에 부정적인 질문을 많이 던져 6월 예정된 판결에서 동성결혼 지지 쪽으로 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미 언론은 일제히 보도했다. 특히 캐스팅보트를 쥔 것으로 평가되는 앤서니 케네디 대법관이 동성결혼의 합법성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연방정부의 법적 권한을 넘어서는 것이라며 DOMA에 의문을 제기했다는 점에 전문가들은 주목하고 있다. 1996년 빌 클린턴 대통령이 서명해 발효된 DOMA는 결혼은 남성과 여성의 결혼이라고 명시하며 동성결혼 부부에게 1000가지가 넘는 연방정부 차원의 세금 및 복지 혜택을 부여하지 못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지난해 동성결혼 합법화 지지 의사를 밝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일찌감치 DOMA 합헌 방어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에 이날 심리에서는 공화당 의원 단체인 BLAG가 대신 피고로 나섰다.

DOMA 위헌 판결이 나오면 동성결혼을 허용한 9개 주와 워싱턴DC의 동성결혼 부부는 복지혜택을 받게 된다. 전날 대법원 심리에서 다뤄졌던 캘리포니아 동성결혼 금지법률 조항(프로포지션8)도 위헌 또는 기각 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높아 “동성결혼 지지자들에게 의미 있는 한 해가 될 것”이라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정치권과 여론도 동성결혼 지지 쪽으로 기울고 있다. 최근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자신이 서명한 DOMA를 폐기해야 한다고 밝혔고 2016년 민주당 대권 주자로 유력한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도 동성결혼을 공개 지지 선언한 바 있다. 민주당은 물론 공화당 의원들도 속속 동성결혼 지지를 선언하고 있다.

CBS방송이 27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10명 중 6명은 연방정부가 동성결혼을 인정하고 이성 결혼자와 동일한 복지혜택을 제공해야 한다는 데 찬성했다.

워싱턴=정미경 특파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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