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카스트로 ‘형제독재’ 5년뒤 막내린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2월 26일 03시 00분


■ 라울 평의회 의장 “권력이양후 정계은퇴” 선언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82)이 5년 뒤 한국의 대통령에 해당하는 국가평의회 의장 자리를 후배에게 물려주겠다고 선언했다. 1959년 혁명 이후 계속돼 온 피델과 라울 카스트로의 ‘형제 독재’를 끝내겠다고 공언한 것으로 아시아의 사회주의 형제 국가인 북한이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전대미문의 3대 세습 독재를 계속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인 정치 개혁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라울 카스트로 의장은 24일(현지 시간) 수도 아바나에서 열린 제8기 국회(인민권력국회) 첫날 회의에서 임기 5년의 의장에 재선된 뒤 TV로 전국에 중계된 연설을 통해 “이번이 마지막 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22일 쿠바를 방문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총리와 만난 자리에서 “나는 사임할 것이다. 나도 은퇴할 권리가 있다. 일요일 내 연설을 잘 지켜보라”며 이날 발표를 암시했다.

국회는 유사시 카스트로 의장의 자리를 대신할 국가평의회 수석부의장 자리에 전기 기술자 출신의 미겔 디아스카넬 전 교육장관(53)을 임명했다. ‘포스트 혁명’ 세대인 그가 혁명 1세대로 수석부의장을 맡아온 호세 라몬 마차도(83)를 일반 부의장으로 끌어내리며 카스트로 의장의 후계자 자리에 올라선 것. 마차도에 이어 차석이었던 라미로 발데스 부의장(80)도 한 자리 밀리는 등 80대 혁명 1세대들의 퇴조가 두드러졌다.

카스트로 의장은 이날 디아스카넬의 승진에 대해 “국가의 미래 리더십이 새로운 세대로 질서정연하게 이동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국가는 보다 젊은 세대에 권력과 책임을 넘길 준비가 된 초월적 순간에 왔다”고 말했다. 이번 인사가 인위적인 지도부 세대교체임을 확인한 것이다. 또 지난해 공언한 대로 평의회 고위직의 임기를 5년 연임으로 제한하는 규정을 헌법에 명시하고 재임할 수 있는 나이를 제한하겠다고 재확인했다.

‘혁명 동지’인 카스트로 형제가 권력을 쥔 채 늙어간다는 것은 쿠바 정치의 가장 큰 위험 요소였다. 김씨 일가의 3대 권력 세습이 정당화되는 봉건주의적인 북한과는 달리 서구적 합리성이 지배해온 쿠바에서 카스트로 형제가 언제, 어떤 방식으로, 누구에게 권력을 물려줄 것인지는 쿠바 사회주의의 향배를 결정지을 중대 관심사였다.

전격적인 지도부 세대교체 선언에 미국 내 쿠바 전문가들의 반응도 좋은 편이다. 언론인 맥스 레스닉 씨는 마이애미헤럴드와의 인터뷰에서 “쿠바 리더십의 총체적인 개선을 위한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워싱턴의 쿠바 분석가 필 피터스는 “(라울은) 물러날 때를 준비해 왔으며 이제 (디아스카넬이라는) 구원자를 찾은 것”이라고 썼다.

마이애미헤럴드는 1991년부터 2년 동안 쿠바에서 디아스카넬을 겪어 그를 잘 아는 익명의 언론인을 인용해 “그는 (사회주의) 이념에 충실하지만 농담을 좋아하고 붙임성이 있어 다가가기 쉬운 성품”이라고 소개했다. 5명의 평의회 부의장직에 합류한 메르세데스 로페스 아세아(48·여)도 역시 ‘포스트 혁명’ 세대로 이번 인사의 주인공으로 떠올랐다.

카스트로 의장이 물러난 뒤에도 후배들을 섭정할 것이라는 회의적인 시각도 없지는 않다. 그가 조심스럽게 추진해 온 개혁조치도 사회주의 체제를 고수하는 테두리 내에서 제한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카스트로 의장은 이날 “개혁은 계속될 것이지만 나는 자본주의가 아니라 사회주의를 유지, 발전시키기 위해 의장이 된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워싱턴=신석호 특파원 kyle@donga.com
#쿠바#세대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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