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BBC 이번엔 ‘성폭행범 오보’로 사장 사퇴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1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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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당 중진을 범인으로 몰아… 엔트위슬 사장 54일만에 하차
숨진 MC 성추문 이어 또 곤경

영국을 대표하는 공영방송 BBC가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지난해 사망한 BBC의 국민 MC 지미 새빌이 수십 년간 방송에 출연한 아동들을 성폭행하거나 성추행해 온 사실이 최근 드러난 가운데 이번에는 간판 뉴스 프로그램이 멀쩡한 정치인을 애꿎게 성폭행 범인으로 지목해 큰 곤경에 빠졌다.

조지 엔트위슬 BBC 사장(50)은 10일 “BBC가 신뢰의 위기에 직면했다”며 “물러나는 것이 명예로운 일이라는 결정을 내렸다”는 성명을 내고 사임했다. 23년 동안 ‘BBC맨’으로 살아온 그가 사장직에 오른 지 불과 54일 만이었다.

사태는 지난주 뉴스나이트가 스티브 메샴이라는 한 남성의 어린 시절 성학대 피해 주장을 그대로 내보내면서 비롯됐다. 메샴 씨는 “1980년대 10대 청소년 시절을 웨일스 비른 이스틴의 한 어린이집에서 보냈다. 이때 보수당 중진 정치인에게 여러 차례 성학대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뉴스는 이 정치인의 신원을 직접 거명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메샴 씨의 증언과 여러 정황을 통해 문제의 남자가 당시 마거릿 대처 전 총리의 측근이자 보수당 재정책임자였던 앨리스터 매칼파인 씨(70)라는 것을 추정할 수 있게 했다. 매칼파인 씨의 이름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타고 순식간에 퍼져 나갔고 정치권은 소용돌이에 빠졌다.

그러나 방송 직후 매칼파인 씨는 “뉴스 내용은 전혀 사실이 아니며 심각한 명예훼손이다”라며 BBC를 강력히 비판했다. 특히 피해자 메샴 씨가 매칼파인 씨의 사진을 본 뒤 “내가 알고 있는 남자가 아니다.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밝히면서 BBC는 충격에 빠졌다. 메샴 씨는 “1990년 초 어느 경찰관이 매칼파인 씨가 성학대범이라며 사진을 건네주었다. 그런데 정치인 매칼파인 씨와 다르다”라고 말했다.

자신이 직접 뉴스나이트 책임도 맡은 바 있는 엔트위슬 사장은 “방송 콘텐츠에 무한 책임을 갖고 있는 사장으로서 뉴스나이트의 보도 기준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며 “그것은 방송돼서는 안 되는 뉴스였다”고 말했다. 그는 “오보가 방송될 때까지 내용을 전혀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존 휘팅데일 하원 문화·미디어·스포츠위원회 위원장은 “마지막 순간 BBC 사장은 곧 편집 책임자”라며 “이 잘못된 보도는 BBC의 명성에 엄청난 손상을 입힐 것”이라고 말했다.

뉴스나이트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BBC의 대표 앵커 제러미 팩스맨 씨(62)도 ‘새빌 스캔들’에 이어 또다시 대형사고가 발생하자 프로그램을 떠나는 것을 고민하고 있다고 가디언지는 전했다. BBC 보도진은 지난해 10월 새빌이 숨진 뒤 그의 과거 성폭행 전력을 취재했지만 뉴스나이트 간부진의 반대로 방송을 못한 사실이 드러나 문제가 되기도 했다.

파리=이종훈 특파원 taylor55@donga.com
#BBC#오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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