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나카 노벨생리의학상에 日열도 더 흥분하는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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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0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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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었을때 잇단 좌절… 쉰살의 반전

야마나카 신야(山中伸彌·50·사진) 일본 교토대 교수의 노벨생리의학상 수상 소식에 일본 열도가 들썩이고 있다. 한국 중국과의 영토 문제, 샤프 소니 등 전자업체의 몰락, 국가신용등급 강등 등 어두운 뉴스 일색이던 가운데 오랜만에 굿 뉴스가 전해졌기 때문이다. 아사히신문 등 유력 신문들은 1면부터 시작해 대서특필했다.

야마나카 교수의 노벨상 수상은 잇단 좌절에 이은 반전이라는 점에서 일본 국민을 더욱 흥분시키고 있다. 동일본대지진과 원전사고로 좌절한 국민이 용기를 얻게 됐다는 것이다.

야마나카 교수가 의대로 진학한 것은 아버지의 핀잔 때문이었다. 일본 중소기업의 메카로 불리는 히가시오사카(東大阪) 시에서 재봉틀 부품공장을 경영하던 아버지 야마나카 쇼자부로(山中章三郞) 씨는 아들에게 “너는 사업 소질이 없다”며 다른 길을 찾으라고 말했다.

학생 때 그의 별명은 ‘부상병동’이었다. 중학교에 들어가 유도를 배우면서 십여 차례 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겪었다. 그래서인지 고베대 의학부로 진학한 야마나카 교수는 1987년 졸업할 때만 해도 정형외과 임상의를 꿈꿨다.

그는 국립 오사카병원 정형외과에서 연수의를 시작하자마자 다시 좌절했다. 도무지 수술에 자신이 없었다. 다른 의사라면 10∼20분에 끝낼 수술에 2시간 동안 진땀을 흘려야 했다. 절망한 그는 연구자의 길을 선택했다. 마침 전신 관절이 뒤틀린 중증 류머티즘 환자를 담당해 충격을 받았던 그는 난치병 연구에 매진하기로 했다. 1993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UCSF) 글래드스턴연구소로 유학을 떠났다.

야마나카 교수는 “대학시절 나는 칭찬받는 학생이 아니었다. 하지만 뭐든 좋아서 열심히 하는 게 중요하다. 연구는 아홉 번 실패하지 않으면 한 번 성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도쿄=배극인 특파원 bae2150@donga.com
#노벨생리의학상#야마나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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