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광청 美 도착… 28일간의 ‘인권 오디세이’ 끝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5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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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中당국 전격 출국 조치

중국의 시각장애 인권운동가 천광청(陳光誠·41) 씨가 마침내 미국에 도착했다. 이로써 지난달 22일 밤 70여 명의 감시를 뚫고 집을 탈출한 이래 28일간의 오디세이가 막을 내리게 됐다.

천 씨는 유나이티드항공(UA) 88편으로 베이징(北京)을 출발한 지 12시간여 만인 19일 오후 6시경(미국 시간) 아내, 두 자녀와 함께 미국 뉴저지 주 뉴어크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에서 가장 먼저 내린 천 씨는 흰색 티셔츠와 카키색 바지 차림이었으며 오른쪽 다리에 깁스를 한 채 목발을 짚고 있었다. 미국행에는 중국어를 할 수 있는 주중 미대사관 직원 2명이 동행했으며 천 씨의 미국 유학 아이디어를 낸 것으로 알려진 뉴욕대(NYU) 미국-아시아법 연구소의 제롬 코언 소장 등이 공항에서 그를 맞았다.

천 씨는 뉴욕대 법대에서 방문연구원으로 있을 예정이다. 그는 가족과 함께 거주할 뉴욕 맨해튼 그리니치빌리지 뉴욕대 교직원 주거단지로 자리를 옮겨 기자회견을 갖고 “마침내 산둥(山東)을 벗어났다. 이 모든 것이 지인들의 도움 덕분”이라며 “7년간 단 하루도 쉬지 못했다. 몸과 마음을 추스르려고 이곳에 왔다. 가장 결정적 순간에 주중 미대사관이 안전한 피난처를 제공해줬다”고 했다. 중국에 대해서도 “냉정하고 차분하게 대응해줘서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이에 앞서 중국 당국은 19일 오전(중국 시간) 베이징 차오양(朝陽) 의원에 입원 중이던 천 씨에게 짐을 싸라고 갑자기 통보했다. 그는 비행기 시간과 편명도 모른 채 베이징 서우두(首都) 공항으로 갔고, 미리 와 있던 현지 관리들이 여권을 건넸다. 중국에서 여권 발급은 신청일로부터 15일가량 걸리는데 천 씨는 16일 여권을 신청해서 사흘 만에 받았다.

천 씨의 미국행은 권력 교체를 앞두고 있는 중국과 대선을 목전에 두고 있는 미국의 합작품이라는 분석이 많다. 일각에서는 다음 달 4일이 톈안먼(天安門) 민주화 시위 23주년이라는 점을 의식해 중국이 서둘러 출국시켰다고 보고 있다. 인권운동가 모즈쉬(莫之許) 씨는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微博)에서 “천 씨와 관련한 언론 보도가 줄면서 이번 사건의 후폭풍 역시 점차 감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이런 의도는 천 씨에 대한 후속 대책에서도 일정 부분 드러난다. 현재 천 씨의 형을 포함한 가족들은 가택연금 상태이며 조카인 천커구이(陳克貴) 씨는 가택연금 과정에서 사복경찰에게 칼을 휘둘러 살인미수 혐의로 잡혀 있다. 천 씨가 미국에서 인권 활동을 하지 못하게 친척들을 ‘인질’로 잡아둔 셈이다. 이 때문에 천 씨는 서우두 공항에서 AP통신과 가진 전화 인터뷰에서 “많은 생각이 떠오른다. 현재 행복하지 않다”고 말했다.

천 씨 사건이 중국의 전반적 인권 상황 개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지 여부도 불확실하다. 공산당 내부 사정에 정통한 스인훙(時殷弘) 런민(人民)대 교수는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천 씨 사건이 어떤 트렌드를 만들기보다는 개별적인 사례로 남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중국 당국이 이번 사건이 주변으로 전염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음을 우회적으로 언급한 것이다. 인권운동가 후자(胡佳) 씨는 AP에 “천 씨가 미국에 간 뒤에도 그에게 범죄행위를 한 관리들은 계속 법 위에 군림하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베이징=고기정 특파원 koh@donga.com
#중국#미국#천광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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