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경제의 체질이 바뀌고 있다. 국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제품을 만들어 수출해서 부(무역흑자)를 쌓아온 수출주도형 국가에서 해외기업을 인수합병(M&A)해 투자이익을 뽑는 자본주도형 국가로 전환하고 있다. 일본은 올해도 사상 최대의 M&A 실적을 냈다.
29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올해 일본 기업의 해외기업 M&A는 609건에 684억 달러(약 75조 원)로 사상 최대였다. 금액 기준으로 지난해보다 78% 늘었다. 재정위기로 유럽은 해외기업 M&A가 22% 감소하고 전통적으로 M&A 강국이던 미국은 56% 증가에 그친 것과 대비된다.
일본이 공격적인 해외 M&A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은 넉넉한 자금 때문이다. 최근 1년간 엔화가치는 미국 달러 대비 7.6% 이상 상승했다. 화폐 가치가 급등하면 수출 채산성은 악화되지만 해외 구매력은 높아져 그만큼 싸게 해외 알짜기업을 사들일 수 있다. 일본의 다케다제약이 경쟁사였던 스위스의 나이코메드를 140억 달러에 인수하는 등 굵직굵직한 M&A가 줄을 이었다.
일본은 거품경제 논란이 있던 1980년대 말에 해외 M&A에 눈뜨기 시작해 정보기술(IT) 호경기인 2000년과 글로벌 금융팽창기인 2008년에도 M&A 붐이 있었다. 일본의 해외 M&A는 과거에는 주로 미국과 유럽 기업이 대상이었지만 이제는 아시아 중동 남미 등 고성장 신흥경제국으로 확대되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올해 성사된 M&A 중 중국 인도 싱가포르 등 아시아 기업이 43%를 차지했다. 10년 전 47%였던 북미 기업은 올해는 24%로 줄었다.
수출 제조업 중심에서 자본투자국가로 전환한 일본이 한 해 해외투자 이익과 배당금 형태로 벌어들이는 소득수지 흑자액은 약 12조 엔(약 180조 원)에 이른다. 일본이 올해 31년 만에 무역수지가 적자(11월 말 누적 무역적자 2조2831억 엔)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되지만 경상수지가 흑자인 것도 이 같은 무역외 수지 흑자 때문이다.
일본 기업이 해외 투자로 벌어들인 외화를 엔화로 바꾸려는 환전수요가 늘어나는 한 엔화 가치는 당분간 떨어지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이 올해 유럽 재정위기, 동일본 대지진, 태국 홍수 등으로 악재가 많았지만 엔화가 유독 강세를 보이는 배경에는 경상수지 만년 흑자국이라는 것이 바탕이 됐다. 하지만 그 내용은 달라지고 있다. 소니와 도요타 등을 앞세우고 세계적인 제조업 제품으로 세계를 제패했던 제조업 강국의 모습이 약간씩 옅어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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