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책임한 파판드레우” EU 지도부 뿔났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1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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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 ‘구제금융 국민투표’ 파문

국제사회의 2차 구제금융안을 국민투표에 회부하겠다는 그리스의 선언에 유럽연합(EU) 지도부가 발끈하고 나섰다. 어떡하든 그리스의 디폴트(채무불이행)를 막아 유럽 재정위기를 타개하려던 EU의 노력을 무색하게 만든 처사라는 비판이다.

구제안이 국민투표에서 부결되면 추가 지원을 받지 못하는 그리스는 디폴트에 빠질 개연성이 크다. 이럴 경우 그리스의 어려움이 가중되는 것은 물론이고 국제 경제위기가 악화될 소지가 많다. 올해 말까지 갚아야 할 국채만도 157억 유로에 이르는 그리스는 당장 1차 구제금융의 6회 지원분인 80억 유로만 못 받아도 디폴트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유로화 사용 17개국 모임인 유로그룹 의장 장클로드 융커 룩셈부르크 총리는 1일 “2차 구제안이 국민투표에서 부결되면 그리스의 디폴트 위험을 배제하지 못한다”며 “국민투표는 불안할 대로 불안해진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국민투표안은 유럽 전부를 놀라게 했다. 각국이 필요한 노력에 동의하지 않으면 유로존의 연대는 만들어질 수 없다”고 그리스의 무책임한 태도를 비판했다.

국제신용평가기관 피치는 “투표에서 구제안이 부결되면 무질서한 디폴트가 이어지면서 유로존 전체의 금융 안정을 위협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토비마 등 그리스 신문이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 다수가 2차 구제안에 반대하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사르코지 대통령, 헤르만 반롬푀이 EU 정상회의 상임의장, 융커 총리,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등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전날인 2일 긴급 회동할 계획이다.

국민투표는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 총리가 2차 구제안 세부 협상이 마무리되면 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추정해 볼 때 투표 시기는 내년 초가 유력하다. 독일은 올해 말까지 2차 구제안 협상을 끝낼 방침이다. 하리스 카스타니디스 그리스 내무장관은 2일 “구제안 합의가 빨리 이뤄지면 12월에라도 투표가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파판드레우 총리가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이유는 현 상황에서 물리적으로 더는 구제금융 정국을 이끌고 나가기가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구제금융을 받기 위해 정부가 취하는 각종 긴축정책은 의회에서 매번 살얼음판을 걸으며 겨우 통과되고 있으며 국민의 저항은 더 커지고 있다. 그리스 정부는 유로존이 6회분 구제금융 지원 조건으로 추가 긴축을 요구함에 따라 특별재산세 도입, 공무원 감축 등의 대책을 마련했으나 국민은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총리 자신과 여당이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는 것에 대한 정치적 부담을 투표를 통해 국민에게 떠넘기려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파판드레우 총리는 국민투표에서 성공하면 긴축정책 추진에 다소 탄력을 받을 수 있지만 부결되면 “국민이 원하지 않으니 어쩔 수 없다”고 ‘나자빠질 수 있는’ 핑계가 생기는 것이다. 4일 실시되는 내각 신임투표에서는 일단 재신임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일각에선 파판드레우 총리가 “그리스가 EU와 유로존 회원국임을 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국민투표와 유로존 탈퇴 문제를 연계해 국민이 쉽게 반대표를 던지기 어렵게 만들었다고 분석한다. 구제안 반대는 디폴트 및 유로존 탈퇴로 이어진다는 논리를 통해 유로존 잔류를 원하는 국민 다수의 심리를 교묘하게 파고들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금융시장에선 투표까지 간다면 구제안이 부결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그리스 내에서는 소수 의견이지만 유로화 이전에 사용했던 자국 화폐인 드라크마화를 되살리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유로화를 포기함으로써 수출 경쟁력을 높이고 독자적인 통화 정책의 여지를 확보할 수 있으며, 결국 경제 정상화 시점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라는 논리에 따른 것이라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제1야당인 신민당(ND)의 안토니오 사마라스 당수는 “총리가 자신을 위해 우리의 미래와 유럽 내 그리스의 입지를 위험에 빠뜨리는 왜곡된 딜레마를 안겼다”고 비난했다. 조기 총선 요구는 거부하면서 집권 연장을 위해 국민에게 정국 혼란의 책임을 돌리는 꼼수를 쓴 것이라는 비난이다.

여당에서조차 총리에 반발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밀레나 아포스토라키 의원은 탈당해 무소속을 선언했고 다른 의원 6명은 성명을 통해 총리 사퇴를 촉구했다. 아포스토라키 의원의 탈당으로 사회당 의석은 전체 300석의 절반에서 2석 많은 152석으로 줄었다. 사회당 중진 의원인 바소 파판드레우 의원은 야권이 주장해온 조기총선과 거국내각 구성을 제의했다.

한편 독일은 2일 그리스에 대한 구제금융 6차분(80억 유로) 지급을 12월 국민투표 때까지 보류한다고 밝혔다.

파리=이종훈 특파원 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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