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WP서 ‘특종 제조기’로 날렸던 바르가스 씨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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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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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퓰리처상 받고 울었다… 불법이민 들킬까봐”

사진 출처: 워싱턴 포스트
사진 출처: 워싱턴 포스트
워싱턴포스트에서 ‘특종 제조기’로 이름을 날렸던 전직 기자가 자신이 불법 이민자임을 고백하는 기사를 써 미국사회에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 어둠 속의 삶 고백


뉴욕타임스(NYT)는 22일자에 호세 바르가스 전 워싱턴포스트(WP) 기자(30·사진)의 불법이민 고백 기사를 실었다. 퓰리처상을 받으며 승승장구했던 바르가스는 자신이 불법이민자로서 18년 동안 신분을 숨기며 살아왔다고 진솔하게 고백했다.

필리핀에 살던 12세 소년 바르가스는 어느 날 조부모가 있는 미국으로 혈혈단신 보내졌다. 자신이 불법 체류자인 줄조차 몰랐던 소년은 16세 때 운전면허를 신청하러 갔다가 자신의 그린카드(영주권)가 가짜라는 걸 알게 됐다. 면허기관 직원은 “다시는 오지 말라”며 그를 돌려보냈다. 소년은 그제야 할아버지에게서 영주권이 돈을 주고 산 가짜라는 사실을 전해 들었다. 이때부터 소년은 ‘숨겨진 삶’을 살아야 했다. 불법체류자 신분을 숨긴 채 중고교와 대학(샌프란시스코대)을 마치고 정식으로 시애틀타임스, 필라델피아데일리뉴스 등에서 일하다 마침내 권위지 WP에 입성했다.

그는 여러 특종을 터뜨리며 탄탄대로를 걸었다. 하지만 내심으로는 불법체류 사실이 들통날까 봐 언제나 조마조마했다. 2008년 버지니아공대 총기 난사 사건 보도로 퓰리처상을 받게 됐을 때 할머니가 황급히 전화를 걸어왔다. 축하전화가 아니라 “사람들이 혹시 네 신분을 알게 되면 어떻게 하느냐”는 걱정 전화였다. 화장실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2009년 WP를 그만두고 허핑턴포스트에서 일했지만 운전면허 기간 만료가 다가와 1년도 안 돼 사직했다.

그는 “내부 경쟁이 치열한 언론사에서 뛰어난 기자가 되기 위해 노력했지만 너무 뛰어나면 개인 신상에 대한 관심을 받게 돼 불법체류 사실이 드러날까 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삶을 살았다”고 고백했다. 그는 “더는 위태로운 삶을 살기 싫어 언론사 기자 생활을 접었다”며 “앞으로 이민법 개혁에 힘을 쏟을 것”이라고 밝혔다. 불법체류 고백 이후 자신의 신분문제와 관련해 현재 변호사와 상의 중이라고 밝힌 그는 “솔직히 나도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며 불안한 심경을 토로했다.

○ 워싱턴포스트는 왜 기사 안 실었나?


바르가스의 고백기사는 NYT 웹사이트에서 즉각 가장 인기 있는 기사 목록에 올랐다. 이 기사가 NYT에 실리게 된 배경도 화제다. 그는 친정이라고 할 수 있는 WP에 먼저 기사를 제의해 게재 약속을 받았으나 WP가 마지막 순간에 게재를 철회했다. 그러자 WP의 경쟁지라고 할 수 있는 NYT에 기사를 제안했고 NYT는 다른 기사를 빼가면서까지 즉각 게재했다.

WP가 파란만장한 스토리를 눈앞에 두고도 게재하지 않기로 한 데 대해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기사가 나갈 경우 불법이민자를 고용했으며 이 사실을 일부 경영진이 알고 있었다는 것이 드러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바르가스는 WP 재직 시 이민정책에 대한 기사를 맡기를 꺼렸고, 결국 견디다 못해 사내 멘터에게 불법체류 신분임을 알렸다.

워싱턴=정미경 특파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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