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국민 “우리 대통령이 우릴 죽이려 하다니…”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6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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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위협을 느낀 국민이 이웃나라로 대거 피란길에 오른다. 총칼로 이들을 공격하는 것은 외국의 군대도, 테러리스트도 아닌 자국의 대통령이다. 석 달 넘게 반독재 시위를 벌인 ‘대가’로 시리아 국민은 삶의 터전마저 잃고 있다. 지금까지 국경을 넘어 탈출한 시리아인들이 1만 명에 육박하면서 이미 터키 국경지역엔 거대한 난민촌이 형성됐다.

피란 사태는 6일 시리아 정부가 “북부 지스르 알수구르에서 반정부 무장세력의 공격으로 정부군 120명이 숨졌다”고 발표하며 시작됐다. 그로부터 약 일주일 뒤, 중화기를 동원한 정부군의 대대적인 보복 공격이 단행됐다. 주민들이 혼비백산 도망가면서 인구 5만 명의 알수구르 마을은 순식간에 유령도시로 변했다. 겨우 탈출에 성공해 터키 국경지역에서 텐트를 친 난민들은 “알아사드(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가 국민을 무차별적으로 죽였다”며 당시의 공포를 전했다.

정부군은 “폭도로부터 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작전을 단행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인권단체나 난민들의 증언은 다르다. 반정부 성향이 높은 이곳 주민들과, 당국의 무력진압 명령에 항의한 군인들을 제압하기 위해 일부러 마을을 초토화시켰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리아 정권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국민에 대한 공격을 이어갔다. 정부군은 알수구르에 이어 이번 주엔 마레트 알누만, 알부카말 등 인근 도시를 연이어 포위 공격했다. 한 인권운동가는 15일 “정부군이 알누만에 포탄을 퍼부으면서 주민 수백 명이 탈출했다”고 전했다.

알아사드 정권의 무자비한 탄압이 진행되면서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규탄 성명이 쏟아지고 있다. 그동안 시리아와 밀접한 관계를 맺어온 터키도 등을 돌렸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는 시리아의 잔혹 행위를 비난하면서 “난민을 막지 않고 국경을 계속 열어두겠다”고 밝혔다.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인 미국 영화배우 앤젤리나 졸리도 “이들을 위로하기 위해 조만간 터키를 방문하겠다”고 말했다.

궁지에 몰린 시리아 정부는 무력진압의 정당성을 강변하기 위해 15일 이례적으로 외신기자 20명을 초청해 “이번에 무장세력에 희생당한 정부군의 시신”이라며 집단매장지를 공개했다. 또 “이제 반란이 진압되고 도시가 안전해졌다”며 피란민들에게 시리아로 돌아와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반정부 세력으로 찍혀 타국에서 불안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시리아인들은 보복을 우려해 고국으로 돌아갈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AP통신은 “터키 난민촌에 머물고 있는 시리아 어린이들이 ‘정권이 물러날 때까지 항복하지 않겠다’는 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약 8500명의 난민 중 절반 가까이는 어린이인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알아사드 부자(父子) 정권의 40년 독재에 저항한 이번 반정부 시위로 지금까지 1100여 명이 죽고 1만 명 이상이 당국에 구금됐다고 유엔은 집계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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